<제15화> 운명(運命)의 장(章)(44)
기사입력 1996년 05월 07일 15시 32분
목엽은 긴장한다.
하지만 이미 두 발은 절묘하게 방위를 밟아 나가며 질타해 오는 검광(劍光)의 살기속을 파고 들었다.
`단숨에 끝내야 한다.'
여유는 없다. 목엽은 물러서지도, 피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상대방의 검기속으로 뛰어 들고 있었다. 마치 스스로 몸을 태우는 부나방 처럼.
놀란 것은 하군휘였다.
당연히 쌍검의 공세에 밀려 나리라고 여겼었는데 상대는 역공을 가해오지 않는가.
하군휘가 주춤거리는 순간에 늑골 아랫부위가 화끈 통증에 휩싸였다.
"헉."
짧은 비명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목엽의 좌수가 옆구리 아래로부터 빠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어서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당했다!'
하군휘는 절망감에 휩싸이면서도 쌍검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예리한 칼날이 목엽의 어깻죽지로부터 살을 파고 흘러 내렸다.
"음."
목엽은 신음을 삼키며 쌍장으로 하군휘의 가슴뼈를 강타한다.
우지직.
뼈가 부서져 나가는 듯한 잔인한 음향이 터졌다. 이어서 하군휘의 신형이 실끊어진 연마냥 삼 장 밖으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허… 억… 헉."
호흡을 감당하지 못하는 목엽.
핏물이 어깨를 타고 자꾸만 쏟아져 나왔다. 중상이었다.
목엽은 간신히 몸을 추스르며 다시 방향을 잡았다. 왕자궁의 불빛이 어서 오라고 손짓 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품안의 제왕학을 움켜 쥐고 휘청이며 걷는다. 눈앞이 가물거리고 호흡도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야한다.'
목엽은 제왕의 도를 동방왕자에게 전하는 것을 마지막 운명으로 선택했었다. 이제 그 운명을 지켜야한다.
얼마쯤 걸었을까?
문득 목엽은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또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지 않은가.
이번의 사내는 하군휘와 달랐다.
강직한 인상이었으나 푸르스름한 귀기가 감돌고 있었다. 동공은 회색이었다.
"그대도 제왕의 도를 원하는가?"
목엽이 물었으나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단지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제왕의 도를 요구하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닌가.
이 땅에 제왕의 도를 전하러 왔던 사내 강문호.
그는 이제 오히려 그것을 빼앗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지를 상실한 실혼의 상태로. 목엽은 전력을 다해 일격을 발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