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나온 장기수 눈에 비친 삶
기사입력 1996년 05월 03일 15시 33분
**12일 K-1TV '신TV문학관' 첫편 **소외된 사람들 묘사 … 해외시장 겨냥 16mm필름 제작 연속극만능시대에 작품성을 내세운 `TV영화'가 만들어져 고급시청자들을 흥분시킨다. 12일 오후 10시45분 1TV에서 방송되는 `신TV문학관' 첫편인 `길위의 날들'(극본 김옥영, 연출 김홍종)
해외TV시장을 겨냥한 만큼 드라마는 16㎜ 필름으로 만들었고, 제작비도 보통의 4배나 되는 약 2억원을 들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드라마의 외형보다는 안에 깃든 작품성이다.
이 드라마는 이야기에 집착하는 기존 드라마틀에 반한다. 며칠간의 귀휴를 얻은 한 장기수(김영기)가 길위에서, 또 고향에서 만난 인간군상들의 무의미한 단편들일 뿐이다.
새벽 저녁 밤의 시간차를 두며 따라가는 카메라의 장면장면은 드라마의 이미지이자 주제다. 카섹스하는 남녀, 대합실의 미친 창녀, 할머니죽음에 넋두리하는 반푼이, TV에 비친 를 보는 치매노인들….
와 그를 보는 역전다방의 노인들과 아무 상관이 없듯이 드라마는 곳곳에 `관계의 단절'을 암시한다.
새벽길 귀휴나온 장기수와 교도경비의 `교차', 핏덩이를 놓고내린 기차안 미혼모, 역무원이 된 죽마고우와의 짧은 만남에 이어 선로를 따라 이탈하는 화차칸은 관계부재를 상징하는 극이다.
십년만에 사흘을 나온 아들과 노모,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자식의 밥상자리는 그래도 부여잡아야하는 안타까운 인간애이자 우리의 희망적인 끈이다.
주름살투성이의 얼굴, 무표정한 주인공 장기수, 하얀 눈구릉, 그안에 점박힌 소나무, 하늘을 덮은 새떼들의 원경과 접경은 클로드 룰루슈의 인상이며, 달리는 기차리듬을 잡은 최경식의 음악도 끝없는 소실점을 향한 선로같은 인생을 아득하게 만든다.
그래서 다시 무감한 얼굴로 교도소길 기차에 오른 주인공의 뒷일은 궁금하지도 않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