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실 칼럼-골프장 짜가족
기사입력 1996년 04월 29일 14시 52분
**속과 겉다른 '골프장 짜가족' 골프에도 머피의 법칙이 있다. `자기가 멋진 샷을 때릴 때는 아무도 안보고있고 어쩌다 생크를 냈을 땐 모두가 보고있다'느니 `여태껏 잠잠하던 팅그라운드에 자기만 올라서면 맞바람이 불어닥친다'느니 하는 것들이다. 이 가운데 요즘 꼭 들어맞는 대목이 하나 있다.
`골프웨어의 가격과 그사람 핸디캡은 정비례한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20만원짜리 골프화를 신은 사람의 핸디캡은 대체적으로 20점을 넘고 30만원짜리 티셔츠를 입고 설치는 친구 역시 30점대를 넘어서더라는 비아냥거림이다. 외양을 밝히는 사람치고 실속있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이다.
물론 프로골퍼들은 예외다.
이들은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골프에 바친다.
그러나 어쩌다가 한달에 두어번 골프장에 나가는 아마추어들 가운데 100만원짜리 외제 드라이브를 휘두르는 사람치고 100점대 이내의 스코어로 라운딩을 끝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게 캐디들의 공통된 이야기이다. 사실 요즘 주말의 골프장은 초여름 맛을 풍기는 날씨탓인지 각양각색의 차림새가 등장, 야외 패션쇼를 방불케한다. 모자에서부터 티셔츠, 바지, 신발, 골프백에 이르기까지 밝고 화사한 골프웨어와 장비들이 눈길을 끌고있다. 여기서 `제돈 내고 제멋 내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평범한 입성보다는 화려한 차림새가 좋고 남의 눈치나 살피는 궁색한 표정보다는 여유있는 미소가 보기에도 한결 낫다. 문제는 매너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피곤한 매너'가 남을 속이는 짓이다.
대표적인 것이 스코어 조작.
더블보기를 해놓고도 캐디에게 흰웃음을 보내며 "보기-"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사람은 얼굴만 쳐다봐도 멀미가 난다. 골프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남이 대신 공을 쳐주는 경기가 아니다.
스코어를 속이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이들은 밉다.
그러나 밉지는 않지만 더이상 눈감아주기 싫은 속임수도 있다.
가명(假名) 라운드족들이 그렇다.
이 부류에는 소위 지도층인사나 공직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취미생활이던, 건강유지던, 오래전부터 골프를 즐겨왔던 이들이 YS 등장 이후 골프장 출입이 여의치못하자 아예 남의 이름으로 라운딩하는 것이다. 이들은 부킹명단에서부터 스코어카드까지 완벽하게 가명을 사용하고 골프백에도 버젓이 가짜 네임택을 달고 다닌다. 이러다보니 웃지못할 사건들도 많이 일어난다.
티업시간이 돼 장내방송에서 몇차례나 독촉 호명을 하는데도 `남의 이름'인 탓에 눈치를 못채고 클럽하우스에서 태연하게 커피를 마시고있는가 하면 얼굴이 제법 알려진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은 선글라스에다 모자를 귀밑에까지
눌러쓰고 다니는 위장술(?)을 쓰고있다. 한때 `세상은 요지경'이란 유행가가 있었다.
시력이 좀 이상한 여자탤런트가 히트시킨 이 노래는 시 말로 `문민시대' 골프장의 요상한 풍정을 재玖게 풍자하고있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언제쯤 우리네 골프장에서 `짜가족'들이 사라질까.
이건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