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순 - 영화‘축제’히로인
기사입력 1996년 04월 26일 15시 16분
##뛰어난 연기력 과시뒤에 얻은 결론 "반쪽은 싫다."
##알고보면 나도 매력 많은 여자
이제는 정경순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게다.
연극배우 정경순으로 기억하기 보다는 영화배우, 혹은 탤런트 정경순이라는 소릴 들을 만큼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섰기 때문이다.
`맥베드'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수많은 연극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과시했고, 영화 `태백산맥'과 TV드라마 `아리랑'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정경순이 이번에는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팬들을 유혹한다.
`축제'(임권택감독-태흥영화사제작).
언제나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연기로 팬들을 사로잡아온 정경순으로서는 난생 처음 작품 전체를 관찰하는 듯한 캐릭터로 `축제'에서 판을 벌인다.
팔순노모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모여든 집안식구들과 친지들, 동네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펼쳐내는 삶의 삽화들을 한발짝 물러나서 들여다보는 게 정경순에게 주어진 역할.
팔순노모의 부음을 듣고 서울서 달려온 소설가 이준섭()의 문학세계를 취재하는, 문학전문지 기자 장혜림이란 인물이다.
상가에 모여든 집안식구들과 동네 사람들에게 준섭 노모의 이야기를 취재하던 장혜림은 상가에 돌연 파문을 던지는 준섭의 이복조카 용순(오정해)의 존재와 맞닥뜨린다.
"분노하고 터뜨리는 연기는 차라리 편안해요. 하지만 `축제'는 연기생활을 시작한 이래 가장 고통스러웠던 연기였어요.
`이거다 하고 감을 잡기 보다는 감독님의 조언을 주로 들었다'는 게 정경순의 고백이다.
그러나 `축제'에서 정경순은 바로 그 고통스러웠다는 인물을 은근하게 화면속에 녹아들도록 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등장인물들을 한데 묶는 연결고리로서 정경순은 `후회'없는 연기를 펼쳐냈다.
죽음을 화두로 삶을 생각하게 하는 이른바 `관조하는 영화'라는 점이 정경순의 연기를 빛나게 했던 배경인 셈이다.
"제가 기자들과 잘 놀잖아요. 그래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여기자 한분을 모델로 삼았죠."
온통 상복과 검은 옷으로 가득한 영화속에서 유일하게 정경순이 `튀는 의상'인 찢어진 청바지로 시선을 끄는데, 바로 이게 모델로 삼은 여기자의 옷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실제로 엉덩이부분을 찢어놓은 이 청바지는 상가 전체에서 가장 섹시한 매력을 발산, 상가의 풍경과 묘한 대비를 이루어내기도 한다.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들이 뒤섞인 인생을 연기하고나니 왜 아직까지 내가 혼자로 있었는지 후회스럽더라구요."
비록 촬영하는 동안 `아리랑'의 출연때문에 일주일에 한번씩 전남 장흥과 서울을 오가느라 힘들었지만, `축제'를 통해 정경순은 비로소 뜨거운 사랑을 해보고 싶은 `성과'를 얻었다며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다.
"알고보면 저도 굉장히 매력있는 여자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