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GK 일리치 '낯뜨거워 죽겠어요'
기사입력 1996년 04월 25일 15시 42분
**후반 21분동안 7골…최대 수모
"멍하네요."
24일 과의 경기에서 2대7의 대패 직후 어깨를 늘어뜨린채
그라운드를 빠져나오는 대우 GK 일리치(26.마케도니아)의 얼굴은 핏기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탈색돼 있었다.
평소 웃음이 좀체없는 그지만 어색한 쓴웃음은 입가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는 이역만리 이국땅에서 이런 일을
당했으니.
정확히 후반 21분부터 42분까지 21분동안 무려 7골.
3분마다 하늘이 노랗던 것이다.
일리치가 일생일대의 치욕을 당한 것은 지난 23일 저녁 세키 감독 아미르
마니치 등 `유고식구'들과 함께 먹은 스테이크 때문.
구토와 복통으로 이튿날 오전 2시까지 인근병원에서 치료한 뒤 경기에 출전해
힘이 빠지고 다리가 떨려 볼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
지난해 32만달러(약 2억5천만원)의 거액 몸값으로 한국무대에 진출한 일리치는
지난 91년부터 4년간 유고 파르티잔 클럽에서 뛰며 평균 1점대의 실점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유고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명 수문장.
적응기간 없이 곧바로 실전에 투입된 지난해에는 다소 부진하긴 했지만 30경기서
42실점, 제몫은 충분히 해냈던 그였다.
그리고 2년차인 올해, 내심 그는 `승부수'를 띄울 작정이었다.
1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 최고의 `신의 손' 등극을 목표했던 것.
1-2로 역전 당했을때까지만 해도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던 일리치가 결정적으로
허탈감에 빠지게 된 것은 후반 24분 김주성이 부상으로 실려나가면서 부터였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었습니다. 수비수들이 우왕좌왕하는게 눈에 보였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좋은 경험으로 삼겠다"는 일리치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