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운명(運命)의 장(章)(32)

기사입력 1996년 04월 24일 15시 19분


**"사원은 나를 이겼소" 그러나 목엽은 과연 이상한 사내였다. "그렇소."

석부용은 상대가 쉽게 시인하자 잠시 경직된 표정을 지었다. 아귀는 목엽의 경솔함에 안면근육이 일그러졌다.

`그가 당대제일의 검객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답답하기 그지없구만. 대관절 어쩌자는거야? 위기를 스스로 자처하겠다는 건 끝내 죽고 싶다는 건가?'



염정선라 석부용의 눈매가 예리해졌다.

"승부의 결과는?"

아귀가 자못 호기롭게 웃는다.

"하하하. 보고도 모르겠소? 동방산장의 이소야가 멀쩡하다면 그와 상대했던 사람은 이미 떠난거 아니겠소?"

어디로 떠났다는 것인가? 석부용은 한 줄기 바람이 가슴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남다른 상대가 아니었던가. 관제묘의 열정이 완전히 식기에는 아직 그 세월이 짧았기 때문이다.

목엽은 여전히 아귀의 의도를 방해한다.

"그는 나를 이겼소."

석부용의 표정이 얼떨떨하게 변했다.

"무적도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지 않았소? 당신에게 죽음을 당하고."

목엽은 언제나 담담하다.

"아니오. 그는 오히려 날 죽이고 떠나간거요."

석부용은 아귀를 무섭게 흘겨봤다. 아귀는 입담좋게 변명을 늘어 놓는다.

"물론 무적도 사원은 더 멀쩡하게 떠났소. 그들은 그저 나뭇가지를 이용해 비무(比武)를 했을 뿐이오. 그 승부는 아주 정당하였소."

목엽은 계속 아귀의 의중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사원의 도법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예(奇藝)였소. 난 깊은 상처를 당하였는데》 만일 나뭇가지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난 절명했을 것이오."

아귀는 내심 팔짝팔짝 뛰며 미칠 지경이었다. 목엽은 자신을 모조리 공개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죽여 달라고 애원을 하는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귀의 예상대로 석부용은 그 약점을 놓치지 않는다.

"우린 부상자를 상대로 싸움을 벌리고 싶지 않지만 당신이 검결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무례를 범해야 할거 같군요."

"미안하오. 동방의 왕가에게 전달해야할 물건이 아니었다면 순순히 당신에게 넘겼을 것이요."

목엽은 추호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고 초연하다. 그의 이러한 태도를 아귀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중상을 하고 있었고 그런 몸으로 석부용 같은 고수를 상대하기란 무리다. 더구나 그녀와 함께 등장한 흑의 경장여인들은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아귀는 슬쩍 사냥꾼 차림의 아라를 보았다. 혹시나 도움을 기대하는 시선으로.

아라는 다소 복잡미묘한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전혀 나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 심상치 않겠구나.'

아귀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가》랏."

염정선라 석부용의 입에서 앙칼진 호통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