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완 2단 ●윤기현 9단 2차예선 결승
기사입력 1996년 04월 20일 16시 11분
제5보(34)=조치훈과 류시훈이 다투게 될 본인방(혼인보)이 과연 어떤 타이틀이기에 대다수 바둑 관계자들의 심정이 착잡하다는 것일까.
전보의 마지막수 백 34에 바둑을 묶어두고 오늘은 그 궁금증을 풀어보자.
본인방은 상금랭킹으로 기성(2억4천만원), 명인(2억원) 다음인 3위(1억8천만원)에 불과(?)하지만 타이틀에 얽힌 역사적 가치를 포함한 '체감랭킹'은 단연 1위다.
본안방의 유래는 16세기말 최고 실권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당대 최고수의 자격으로 녹봉을 받게 된 승려 닛카이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거주하더 암자 '본인방'을 따서 아예 성마저 바꾼 닛카이는 최초의 바둑도장 본인방가를 세워 전국의 바둑판도를 장악한다.
이후 본인방은 당대 최강자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됐으며 그 영예로운 칭호는 처절한 후계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젊은 강자에게 이어졌는데
1941년 21세 본인방 슈사이가 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무려 400년간이나 이 세습구도가 지속됐다.
슈사이의 은퇴로 으로 넘겨진 본인방은 최초의 공식 신문기전이 된다.
이쯤되면 프로기사들은 오랫동안 '본인방이야말로 진정한 강자'라는 잠재적 의식속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6년 전대미문의 '휠체어대국'에서 조치훈에게 기성을 빼앗아 8년이나 서열 1위의 자리를 지킨 고바야시가 끝까지 당대 최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조-고바야시 양웅시대'에 묶였던 이유도 네차례에 걸친 본인방 도전 실패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본인방은 단순한 서열 3위의 타이틀이 아니라 프로바둑의 역사와 전통을 대변하는, 가장 적인 타이틀임과 동시에
최강자라면 반드시 거쳐야하는 관문이었던 셈.
바둑관계자들이 조치훈과 류시훈의 본인방결정전에 갈채를 보내면서도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프로바둑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타이틀을 한국출신 조치훈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달갑지 않은데 이번에는 아예 도전자까지
류시훈이 차지하고 나섰으니 어찌 심기가 편하겠는가. 바둑판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