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운명(運命)의 장(章)(29)

기사입력 1996년 04월 20일 16시 00분



목엽은 황보백령의 요염하게 아름다운 얼굴이 문득 눈앞을 스쳐갔다.


무림에서 봉황곡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녀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아귀가 기름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쪽쪽 빨더니 기지개를 켰다.


"으아… 잘먹었다. 날 배 부르게 해줘서 한 마디 하는 말인데 봉래산에 봉황곡은 없소. 봉황곡은 오직 황금사원 주인의 가슴에만 있소."



아라가 놀란 듯 물었다.


"넌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



아귀는 자신의 가슴을 가볍게 두들긴다.


"사실 난 모르는게 별로 없소. 어쩌면 당신의 진정한 신분도 알아낼 수 있을거요."


금방 긴장의 표정이 되는 아라였다.


"넌 복술가(점쟁이)냐?"


아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능구렁이같이 중얼거린다.



"당신의 활은 절대 평범하지 않소. 전통(箭筒)의 무늬는 황실의 문장이 고스란히 새겨져 화려하기 그지없고 길이가 6척인 활은
궁중연사(宮中燕射)에서 주로 사용하는 예궁(禮弓)이 분명하오. 또한 그 촉은 쇠도 관통한다는 장백산의 청석이라 불리는 귀한
흑요석제(黑曜石製)이니 당신은 분명 황실 사람이오."



아라는 목전의 볼품없는 꼬마가 이렇듯 예리한 관찰력을 지니고 있을 줄은 정녕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매우 놀란다.


그러나 목엽은 여전히 변함없는 얼굴이다.



마치 아귀의 말은 전혀 듣지 못한 태도다. 아귀가 다시 충격을 준다.


"새벽 이슬을 밟으면서까지 봉황곡을 찾는 것을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소? 더구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친구를
하자면서 호의를 베푸는 건 어떤 꿍꿍이가 있을 것이오. 난 당신에게 어떤 목적이 있으리라고 보여지는데… 내가 잘못 본 것이오?"



아라는 기가 막혔다. 목전의 꼬마는 보통내기가 아닌 것이다. 그 아이는 전혀 잠을 자고 있었던게 아니다. 자고 있는 척 하면서
은밀히 자신의 행동거지를 파악하고 있었던게 분명했다. 아라는 말을 더듬고 있었다.



"그건 아니고… 난… 단지…"


아귀는 여지를 두지 않는다.


"변명은 하지 말기로 합시다.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가 진실하지 못하면 그건 우리 같은 사내들에게 매우 불행한 일이니까.

우릴 실망 시키지 말아요. 이렇게 맛있는 사슴고기를 먹게해준 사람을 의심 한다는 건 사실 예의가 아니죠."


이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아라는 반격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뜻밖의 제안이었다.


"목엽! 그대는 정처가 없다고 했는데 내가 초대를 한다면 받아들이겠소?"



목엽은 물론이고 아귀도 의아한 낯이 된다.



"어디로 초대를 한단 말이오?"



"우리 별장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소. 바쁜 일이 없다면 함께 가서 술도 더 마시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마음껏 나누도록 합시다."


이것은 사실을 밝히겠다는 의도인가? 목엽의 눈매가 돌연 가느스름해진다.



"호의는 감사하오만 불청객들은 어찌하오?"



이때 마치 안개의 기둥인양 희미한 그림자들이 장내를 조여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