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운명(運命)의 장(腸) (27)
기사입력 1996년 04월 18일 16시 20분
그녀가 물었다.
"귀하는 강호인이오?"
목엽은 부인하지 않았다.
"강호인임에는 틀림없지만 한낱 이름없는 뜨내기에 불과하오."
"하하하…. 나도 사람보는 눈이 있으니 공연히 자신을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소."
또 한번 호쾌하게 웃은 그녀는 문득 정색을 하고 물었다.
"목엽! 나의 친구가 돼줄 수 있겠소?"
목엽은 흠칫한다.
"친구…."
"나는 남자친구 사귀기를 아주 좋아하며 그중에서도 강호인을 가장 좋아하오. 그러므로 나는 귀하를 친구로 삼고 싶은 것이오."
"…."
목엽은 여인의 너무나 직선적이고 명쾌한 말에 잠시 대답을 못하고 생각에 잠긴다.
낯선 여자가 만나자마자 친구가 되자고 한다는 건 매우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아라라는 이 여인에게는 그것이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일만큼 솔직한 그녀의 제의는 목엽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인력이 있었다. 목엽은 그 인력에 자신도 모르게 끌려들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대의 친구가 되고 싶소."
"하하하…. 그러면 이 순간부터 우리는 친구요."
아라는 크게 웃으며 목엽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녀의 손은 여인답게 부드럽고 따스했지만 또한 남자 못지않은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아라는 목엽의 손을 놓고 일어서더니 뒤에 서 있는 말 옆으로 걸어갔다.
"좋은 친구를 만났는데 술 한 잔이 없어서야 되겠소? 내가 마침 사슴도 한 마리 잡았고 술도 지닌 게 있으니 잘되었소."
그녀는 말 위에서 사슴을 끌어 내리더니 허리춤의 단도를 빼어 다리를 척척 자르고 베어냈다.
그녀의 단도를 쓰는 솜씨는 능숙하고도 절묘해서 무림의 고수못지않게 보였다.
베어낸 사슴 다리를 화살에 꿰어 모닥불에 올려놓은 그녀는 안장에 매달린 작은 가죽부대 속에서 호로병을 꺼내 왔다.
"내가 술병을 차고 다닌다고 해서 술주정뱅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오. 나는 오늘처럼 좋은 친구를 만날 때를 대비해서 약간의 백향로(白香露)를 가지고 다니는 것뿐이니까."
목엽은 빙그레 웃었다.
"나는 오늘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소."
사슴고기가 익는 구수한 냄새가 풍기는 가운데 아라는 목엽 옆에 나란히 앉더니 호로병을 건네주었다.
"술잔은 없으니 그냥 마십시다."
그녀는 고기가 익자 단도로 베어서 소금을 찍어 내밀었다.
목엽은 사양하지 않고 호로병을 거꾸로 들어 꿀꺽꿀꺽 마신 뒤 고기를 씹어 먹었다. 술은 향긋했고 고기는 연하고도 맛이 있었다.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