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운명(運命)의 장(章) (26)

기사입력 1996년 04월 17일 14시 51분


목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하시오."



"고맙소."



여인은 모닥불 옆에 털썩 앉더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귀하는 여행중에 인가를 찾지 못해 야숙을 하는 중이오?"



"그렇소."



여인은 깊이 잠들어 있는 아귀를 보면서 혀끝을 찼다.



"동행자가 매우 어리군요."



"그렇소."



목엽은 간단히 대꾸하며 넌지시 그녀를 살펴보았다. 역시 그녀는 특이한 미모와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렷한 이목구비에 눈썹은 그린 듯 짙었고 눈빛이 매우 강렬하고 예리했다.



또한 일신에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품과 기도가 은은히 깃들어 있어 결코 범상한 여인같지 않았다.



청년처럼 늠름한 태도나 어조는 이상한 위압감까지 느끼게 했다.



목엽은 내심 의혹을 느꼈다.



`이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인은 목엽의 내심을 짐작했는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새벽에 말을 타고 돌아다닌다고 해서 산적의 일원은 아니니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오. 산중을 헤매며 사냥을 하던 중 여기까지 오게 된 것뿐이오."



붉은 입술 속에서 하얀 이를 살짝 보이며 웃는 그녀에게서는 고혹적인 여인의 매력이 물씬 풍겼다.



녹비의에 감싸여 있는 요염한 몸매는 짙은 관능의 향기를 발산하는 듯했다.



목엽은 본래 여자에 대해서 무심한 성격이었지만 이 정체불명의 이국적인 미녀에 대해서는 점점 관심이 높아졌으므로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그대는 사냥을 좋아하오?



여인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렇소. 나는 사냥을 제일 좋아하고 그 다음에는 술이나 남자도 좋아하오. 물론 남자와 함께 자기를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오. 하하하…."



그녀의 웃음소리는 남자처럼 호쾌했다. 목엽은 그저 빙그레 마주 웃어줄 뿐이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목엽의 침묵에 어색해지는 분위기. 여인이 화제를 돌린다.



"난 북경에 살고 있으며 이름은 아라(阿羅)라고 하오."



목엽은 그녀의 이름을 듣자 호녀(胡女)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진(女眞) 호족(豪族)의 신분높은 귀공녀이리라.



지금 자금성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모두 호인(胡人)들이니 북경에 살고 있다는 그녀도 보통 신분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이 무뚝뚝한 사내는 마지못해 입을 연다.



"나는 목엽이라 부르오."



"목엽…?"



북경의 호족 아라의 눈빛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한다. 설마 그녀는 목엽의 신분을 알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