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요시사회 > 본투킬
기사입력 1996년 04월 17일 14시 51분
## 섬뜩한 폭력미학 그리고 사랑 폭우가 쏟아지는 도심 한복판,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끔찍한 테러가 자행된다. 자동차의 창문을 부수고, 차안의 사내를 향해 꽂히는 단도. 사내의 눈에선 피가 튀고, 칼을 쥔 손의 동작은 유연하게 움직여 사내의 눈알까지 도려낸다.
첫장면에서부터 심상찮은 폭력미학이 영화의 색깔을 짐작하게 한다. 하기는 제목도 `본 투 킬', 죽이기 위해 태어난 킬러의 이야기이니 오죽할까.
철길에 누운 어머니에게 손을 붙들린 채 공포에 질린 소년, 한사코 붙드는 어머니의 손을 할퀴고 빠져나오자 지나치는 기차.
어두운 기억을 가슴에 품은 킬러, 길()이 `본 투 킬'을 이끌어간다.
철저하게 소외되고 단절된 채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묵묵히 주어진 킬러의 임무만을 수행하는 살인기계. 그 대가로 받는 돈다발도 냉장고에 처박아둘 뿐, 쓸 줄은 모른다.
그러나 가수의 꿈을 꾸는 밤의 여인, 수하(심은하)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던 길의 시선이 흔들리면서 느와르는 멜로로 덧칠을 시작한다.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길의 차가운 심장에 사랑이란 감정이 비집고 들어선다. 폭력과 범죄, 허무주의와 절망으로 점철된 길의 세계에 바야흐로 한줄기 구원의 빛이 찾아드는 것도 이때부터다.
운명적인 만남을 예감하는 두 사람. 사랑의 행위도 서툴고, 표현도 서툴지만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광기서린 순수다.
이미 `걸어서 하늘까지' `게임의 법칙'에서 보여줬던 헌신적인 사랑, 관객의 누선을 자극할 줄 아는 장현수 감독의 치밀한 계산이 또한번 관객을 울린다.
죽음을 예감한 마지막 싸움에 나서기 전, 수하를 기차로 떠나보내는 이별장면은 시사회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어낸 `고도의 장치'로 손색이 없다.
폭력조직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폭력세계에서 발을 빼려는 길의 처절한 몸짓이 액션느와르의 진수를 보여주면서도 두 사람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는 멜로영화의 감성을 한껏 자극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야간촬영으로 이루어졌지만 베테랑 정일성 촬영감독이 파나비전 카메라로 잡아낸 심도깊은 영상미가 액션과 멜로의 조화를 적절하게 이루어내고 있으며, 다분히 잔혹하고 통속적인 드라마는 장 감독의 따뜻한 시각의 연출에 전체적으로 끈끈한 휴머니즘이 묻어난다.
한 가지 덧붙여 어두운 영화를 감각적인 `빛'으로 살려낸 고 차정남 조명감독의 유작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 이창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