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조영 2단 ● 천풍조 7단 = 2차예선 결승
기사입력 1996년 04월 11일 15시 27분
제6보 (70~75)=흑 71은 당연한 수비. 섣불리 외면했다가는 즉각, 백 1, 3으로 이단젖혀와 좌변 흑진이 납작해진다. 백 5때 흑 A로 늘면 백 B로 파탄. 좌하귀 흑 일단이 몰살당한다. 흑 6으로 따낼 수밖에 없을 때 백 A로 되몰아 `백 만족'. 좌하쪽 흑의 차단작전은 실패다. 두 개의 희생타를 날려가며 강경하게 백 일단을 차단, 중앙으로 내모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백 70, 72로 넉넉하게 품을 넓히니 더이상은 공격대상이 될 것 같지 않다.
하변에 10집이 불어나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애초 그냥 흑로 배후에서 육박, 백이 중앙 연결을 꾀할 때 하변에 전개해도 가능한 수치다. 다시 말해서 흑은 공연히 희생타를 날리고 중앙 백을 강화시켜주었다는 얘기.
백 74에 흑은 즉시 `가'로 늘지 않고 무엇인가 망설인다. 호각의 국면이라면 흑 `가'는 당연한 곳. 이 머뭇거림도 좌하쪽으로 부터 시작된 일련의 차단공세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흑 75. 급박한 치중 한수에, 지금 흑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우울한 정서가 드러난다. 당장, 백 `가'면 좌변 흑진이 양분된다. 흑이 그 관통의 아픔을 모를 리가 없다.
또 흑 75가 좌변관통을 외면해도 좋을만큼 강렬한 공격도 아니다. 맹렬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그것은 외형일 뿐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뭐랄까, 일종의 매저키즘에 기저(基底)한 자위적 행위랄까. 뭔가 고통스러운 변화를 구해 `나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혹은 그 실패를 잊고 싶은'것이다.
바둑은 빠르게 파국으로 접어든다. < 해설.김재구 8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