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운명(運命)의 장(章) (19)
기사입력 1996년 04월 10일 15시 55분
여덟 필의 말.
팔두마차를 끌고 있던 말들이 사방으로 튀겨져 날아가는게 아닌가?
가공할 충격에 못이겨 팔두마차가 순간적으로 분해돼버린 것이다.
말들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이 장내를 온통 참혹의 소용돌이로 빠뜨리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궁수월과 무산파파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검은 기류가 뿜어지는 순간까지도 설마 하는 심정으로 마부석을 지켰던 것이다.
찢겨져 날아간 말의 핏물을 고스란히 뒤집어 쓴 그녀들.
온통 피범벅이 된 궁수월과 무산파파는 넋이 나간 얼굴로 장내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반이 부서져 나간 마차 바퀴 옆에 서있는건 황보백령이었다.
그녀의 품에는 여전히 영영이 안겨 있었다.
황보백령 역시 목전의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감이 잡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당금 무림에 어느 누가 이렇듯 공포스러운 장력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러한 극강의 고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호호호호."
처절한 장내에 어울리지 않는 교성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동시에 교구(巧軀) 하나가 바람처럼 떨어져 내렸다.
궁장은 화려하였고 얼굴 또한 수려하였다. 모용추다.
그녀는 살벌한 상화을 전혀 개의치 않으며 일심부주에게 탄성을 토해내고 있다.
"사형의 묵양신공(墨陽神功)이 대단한 경지에 올라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오늘 직접 눈으로 보니 과연 놀랍군요."
묵양대인이 점잖게 응수한다.
"사매의 칭찬을 들으니 공부(工夫)의 성취가 보람이 있군."
"경하드립니다."
"하하하. 고맙소."
황보백령이 그들 사형제를 번갈아 노려보다가 싸늘하게 소리친다.
"사문의 담소를 나누기에는 장소가 적당치 않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남의 마차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우선 변상을 하고나서 다시 놀라게 한 죄를 묻겠다."
일심부주 묵양대인이 가소롭다는 듯이 황보백령을 바라본다.
"변상은 내가 받아야 한다. 사람을 깔아 뭉개려 한 것은 그대의 팔두마차이다.
당연히 내가 죄를 물어야지."
무산파파가 어슬렁거리며 나선다.
"이 늙은 족제비 같은 놈아 ! 말 못하는 짐승들이라고 이렇게 참혹스럽게 죽일 수 있단 말이냐?
내 결코 용서 않겠다."
팔두마차의 마부로 머물며 준마들과 고락을 함게 해 온 무산파파.
그녀의 분노는 남다르다.
그러므로 둔하게 보이던 움직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바뀌는 순간에
이미 그녀의 신형은 묵양대인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쉬이익….
미처 황보백령이 제지할 시간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