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운명(運命)의 장(章)(17)
기사입력 1996년 04월 08일 16시 13분
계집아이.
불과 7-8세 가량의 여자 아이가 마차의 정면을 가로막고 우두커니 서있는게 아닌가.
특이한 구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평범한 여아.
놀랍게도 그 아이는 양문우의 하나뿐인 딸 영영이었다.
흡칫 경직되는 마부석의 무산파판.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노안으로부터 무서운 살기가 줄기줄기 뻗쳐 나왔다.
"이럇…."
무산파파는 채찍을 휘두르며 마차를 더욱 무섭게 질주시켰다. 영영은 가공할 기세로 쇄도해 오는 팔두마차를 보며 그저 소스라칠 뿐이었다.
"아앙…."
아이의 울음은 정적의 밤하늘을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여덟 필의 말발굽에 의해서 그 아이는 분시가 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실로 위급한 순간이었다.
팟….
갑자기 팔두마차의 지붕을 뚫고 일학중천의 신법으로 인영 하나가 치솟하ㅆ다. 동시에 하얀 그림자는 공중에서 빙글 몸을 돌리더니 그대로 전방으로 폭사하였다.
실로 경이로운 몸놀림.
마치 하얀 선이 절륜한 곡예를 하며 포물선을 긋는 듯한 아름다운 일련의 동작이었다.
그 인영의 주인공은 황보백령이었다.
그녀는 영영을 낚아챔과 동시에 지면을 박차며 허공으로 솟아 올랐고 팔두마차는 아슬아슬 하게 그 자리를 밟과 지나쳤다."무슨 짓이오? 파파?"
영영을 안고 마차의 지붕으로 떨어져 내리며 호통을 치는 황보백령.
무산파파의 노안에서 신광이 뿜어진다.
"마차를 멈추게 하려는 수작이옵니다."
궁수월이 어느틈에 무산파파의 곁으로 옮겨 앉았다.
"달려요…!"
총관의 목소리가 은은히 떨려 나오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녀 역시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이미 황보백령도 느낄 수가 있었다.
울창한 송림의 중앙으로부터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뻗쳐 나오고 있지 않은가. 뿐만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무지막지한 살기가 감돌고 있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호흡을 멈출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극맹한 기류였다.
함정이다.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강력한 살기에 황보백령은 두려움이 생겼다. 그 순간에 어째서 목엽의 무심한 표정이 떠오르는 것일까.
황보백령은 영영을 가슴에 꼭 껴안았다.
우측 컴컴한 송림 속에서 돌연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쳐라!"
어둠속에서 실랄한 광채가 번뜩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