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대말할때가 따로있지…
기사입력 1996년 04월 08일 14시 46분
"누가 우리집 창문을 멸망 시켰습니까?!"
주한 외교관 부인은 화가 나서 벌게진 얼굴로 이런 대사를 외치고 있었고 그 앞에 서있던 세명의 꼬마들은 웃음을 입 안 가득히 꾹꾹 담고 있으면서 연신 킥킥거린다. 서울의 한 고급 주택가 골목길에서 야구 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실수로 어느 집 창문 유리를 깨고 말았는데- 그집 주인인 외교관 부인이 열받아 아이들을 꾸짖는 품격(?)높은 말이다. 영어 등의 말이라면 이처럼 난데 없이 남의 집 창유리를 박살냈을때 `누가 유리를 깼지?'정도 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말은 참으로 변화무쌍해서 오만가지 감정을 자세히 표현할 수 있는 아주 편리한 언어다. 특히 앞에서의 에피소드처럼 존대어는 나이 지위 성별에 따라 쓰임새가 아주 다양한데,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의 말인즉 처음 익히기가 다소 어렵지만 배워 두면 경어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단다. 존대어가 잘 발달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보다 나이며 지위 등이 위인 사람에게는 존경의 뜻을 늘 갖는 예의가 아주 밝다는 뜻이 될 것이다. 우리의 `양반'은 말 `신사'에 해당한다는데 옛 양반들은 아내를 부를때도 요즘같은 `여보'니 `어이'같은 낮춤말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사극에서 자주 보지 않는가.
꼭 `부인,이리저리 어쩌구 저쩌구 하시구려!' 하며, 여자의 대답은 더더욱 공손하다. 밤에 이불 속 데이트 신청때도 "부인, 내 그럼 잠시 오르겠으니 양해 해주길 바라겠소이다"로 예를 갖췄다는 말씀을 필자의 할아버지가 당신의 할아버지에게 들으셨노라며 해 주셨었다. 철수는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양반집 자제다.
그가 한살 아래의 영희를 사귀어서 두 사람이 처음으로 특정 숙박업소에 갔을때다. "아야 아야! 몰라! 아야!"영희가 소리를 지르고 있지않은가.
철수, 하던 동작을 중단하더니 "한살이나 아래인 아녀자가 어디 감히 반말을 하는 거니?"라며 심히 나무란다. 역시 배운 집 규수인 영희, 대번에 신음이 달라지는데 "아야요!아야요! 아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