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러의 손목 통증
기사입력 1996년 04월 04일 16시 57분
아침에 출근해서 진료실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볼링 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 볼링핀에는 `다시 운동 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글귀가 적혀 있다. 이 글귀를 볼 때마다 지치고 피곤함이 싹 가시곤 한다. 의사란 직업에 아주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처럼 많은 환자를 접하다 보면 유독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환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건장한 체구로 한눈에 운동 선수 임을 알 수 있는 청년이 병원을 찾았다. 대표급 볼링 선수인데 앞으로 미국의 선진 볼링을 배워서 가능하면 프로 선수로 뛰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했다. 얼마전 미국의 코치를 만났는데 아주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그의 진로는 탄탄대로가 열린 듯 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신체적인 조건이나 정신력은 뒤질 것 없는데 문제는 바로 손목. 특이하게도 볼을 새끼 손가락을 바짝 구부려서 손바닥에 붙인 채 잡아서 손목에 부담을 많이 주는데 최근 3개월 동안은 손목이 아파서 볼링 볼을 잡아보지도 못했단다. 손목 때문에 볼링을 그만두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몹시 불안해 했다. 이 선수의 손목을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다른 부분보다는 가늘고 약했다. 더구나 새끼 손가락과 손목의 힘을 많이 이용해 스윙을 하다보니 손목 뿐 아니라 손목과 손바닥 사이에 있는 7개의 작은 수근골들 사이가 느슨하게 벌어져 있었다. 손목의 건조염과 수근골 사이의 골관절염으로 진단이 됐다. 약 두달간의 치료기간중 먼저 볼링을 중지하고 손목을 보호하기 위해 아대를 차도록 한 뒤 기초 체력 운동을 시켰다. 이후 이온화 약물 투여로 손목의 건초력과 수근골의 골관절염을 진정시킨 다음에 힘줄과 관절막의 치료에 들어갔다. 또 특수한 물리치료로 힘줄을 부드럽고 탄력있게 회복시키면서 단계적으로 운동치료를 시작했다. 운동치료에 점차 적응이 되는 것을 확인하고 약을 계속 복용하면서 서서히 볼링을 시작하고 손목과 관계 있는 자세를 하나 하나씩 수정해 나갔다. 시험삼아 나간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자신감을 찾게 되자 일단 팀에 합류해서 운동하면서 마무리 치료에 들어갔다. 그후 여섯달 동안 소식이 없더니 어느날 갑자기 나타났다. "그동안 시합에 나가면서 체력을 키우느라 무척 바빠서 연락을 채 못드렸습니다. 지금은 욕심껏 연습을 해도 손목이 아픈 줄 모르겠어요. 볼링코치 자격으로 내일 출국하는데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이 볼링 핀을 가져왔는데 받아주십시요." 3년전 일인데 새롭게 생각난다. 최근의 근황도 물론 궁금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