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규7단 ●이창호7단
기사입력 1996년 03월 27일 18시 23분
제2보(5~21)=흑 5 때 백 6은 독특한 취향. 앞서도 말했지만 상대가 이창호이기 때문에 승부를 포기하는 기사는 없다.
"한수 배우는 거지 뭐…."
말은 그렇게 해도 마음 속으로는 `나도 한번 이창호를 이겨보자'고 한다.
백 6으로는 백 1 이하의 길을 밟을 수도 있다. 백 3 다음 바로 흑 6에 두지 않고 좌하쪽 흑 4, 백 5를 먼저 교환하는 것은 좌변을 보다 효율적으로 처리하겠다는 뜻.
백이 A에 있을 때와 비교해 B의 침입을 완화시킨 효과가 있다. 속칭 ` 정석'으로 요즘은 아마추어들의 바둑에서도 흔히 등장한다.
이 바둑도 `황원준:유창혁'전만큼이나 빠른 속도를 보인다. 우하귀 흑 11의 한칸 협공에 2분 정도를 소모했을 뿐 모든 수순이 소나기처럼 급하게 쏟아진다.
두 사람은 여름날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갑자기 쏟아져내리는 비. 채 우산을 준비 못한 사람들이 접은 신문지 따위로 머리를 가리고 이리 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젖은 한낮의 도시 풍경이 바둑판 위로 펼쳐진다.
백 12에 뛰어들면 백 20까지는 외길. 바둑은 `백의 실리'와 `흑의 외세'로 갈라질 듯하다.
한국기원이 발행하는 월간 `바둑' 최근호를 보면 재미 있는 `이창호시리즈'한토막이 있다.
"이창호시대를 끝내는 방법 두가지는? 첫째 킬러를 보낸다. 그래도 안되면 구미호를 보내 미인계를 쓴다."
이어지는 답이 걸작이다. "킬러를 보냈더니 원캉 두터워서(바둑이)칼이 안들어 가더라. 그래서 구미호를 보냈더니 이건 아예 목석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