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규 7단 ● 이창호 7단 = 2차예선 결승국

기사입력 1996년 03월 26일 15시 50분


제 1 보 (1~5)=드디어 이창호가 나타났다. 12관왕 이창호의 얼굴을 도전무대도 아니고 본선도 아닌 예선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한 느낌을 준다. 전기 타이틀자의 프리미엄이 없는(시드가 주어지기는 하지만)선수권전으로 치르는 박카스배 천원전의 특징이다. 김만수 초단, 양상국 7단을 꺾고 예선 결승에 도착. 이창호를 만나는 기사들은 거의 똑같이 3단계의 과정을 밟는다. 일단, 대진표를 보고 상대가 이창호인 것을 알면 머리를 한번 탁, 친다. 그게 1단계다.

"아이쿠, 이창호야?"

그 말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다. 한국기단에서 차지하는 이창호의 크기와 무게가, 그 짧은 말 한마디에 몽땅 실려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엔. "한수 배우는 거지, 뭐》."

불과 5, 6년 전에는 이 그와 똑같은 표현의 대상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상대가 이라고 해서, 이창호라고 해서 처음부터 승부를 포기하는 기사는 없다. `한번쯤은 나도 을, 이창호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프로다.

마지막 단계. 이튿날 누군가 대국결과를 물어오면 이렇게 말한다.

"창호랑 뒀어…."

그 뒤에, `어떻게 됐어?'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는 기사는 몇몇에 불과하다.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더이상 묻지 않는다. 상대가 이창호라니까?

오늘은 7단이 머리를 탁, 친다. 본선진출을 눈앞에 두고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를 만났으니.

49년 인천생. 70년 아마유단자대회 우승, 이듬해인 71년 입단의 좁은 문을 통과했다. 부산의 이기섭 5단과 입단동기. 대국이 없는 날이면 배낭을 꾸릴만큼 산을 좋아하는 산사나이. 현재 한국기원 감사직을 맡고 있다.

10시 정각 이창호의 흑으로 대국 개시. 이창호만큼 별명이 많은 기사도 없다. 돌부처, 포커페이스, 강태공, 신산(伸算). 부동심의 도인 등등》. 그런데 최근에는 `인간의 한계를 알아보려는 바둑신의 시험 샘플'이라는 긴 수식어가 또 추가됐다.

지금도 모든 상대가 버거워하는 강자인데 계속해서 기력(棋力)이 향상되고 있다는 얘기다. < 해설·김재구 8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