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창혁7단 ● 황원준8단 = 2차예선 결승
기사입력 1996년 03월 25일 15시 46분
총보 (1~178)=아까운 바둑. 이길 수 있었던 대국에서 패하면 `아까운 바둑을 놓쳤다'고 말한다. 이 대국은 황원준 8단의 `아까운 바둑'이었다. 저단시절 황원준은 깐깐한 바둑이었다. 79~83년 저단시절 승률, 다승 1위를 오르내리던 강타자 `황소'가 바로 그였다.
대국초반은 네 귀 모두 화점전성시대에서 보기 힘든 소목, 걸침의 형태가 이루어져 눈길을 끌었다.
흑 29까지는 `선착의 효'가 유지된 형세. 백 30 때 흑 `가'였으면 백의 행마가 어려워 흑이 재미 있는 바둑이었다.
패착이라고까지 극언할 수는 없겠지만 흑 31은 패인(敗因)의 혐의를 벗을 수 없다. 방향착오성 실착. 38까지 상변에서 선수를 뽑은 백이 하변으로 날아와 백 40 이하 46까지 당당하게 터를 잡은 뒤로는 흐름이 이상해졌다.
좌변 흑 53 이하의 공격도 좀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백 56의 역침공이 강력했다. 백 64로 깨끗하게 넘고 72까지 좌하귀가 유린된 결과를 보면 그동안 좌변 백 한점을 잡아 집을 약간 넓힌 것에 불과한 흑의 손해가 분명하다.
백 78로 중앙출로를 터 `백우세'. 이후 흑은 105까지 사력을 다해 중앙에 울타리를 치며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우상쪽 백을 계속 노렸지만 공격당할 만큼 취약한 형태가 아니었다. 백 152로 허리가 뚫려 차이가 더 크게 벌어졌고 백 156으로 우상쪽 백까지 여유있게 연결돼 `만사휴의(萬事休矣)'. 더이상의 수순은 무의미하다.
178수 끝. 백 불계승.
이창호가 제7기 동양증권배 결승 제4국에서 중국의 마샤오춘을 3승 1패로 꺾고 우승, 통산 3기 제패를 기록했다.
이튿날 짧은 대담에서 이창호가 밝힌 `바둑관'을 음미해보니 어느새 또다른 경지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바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마디로 정의해보라.
"광대무변한 바둑을 어떻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아직 바둑을 모른다. 스스로 느낀 부분만을 조금 언급한다면 `바둑이란 끝없이 길을 가는 것'이다. 목표보다는 길을 가는 그 과정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