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혁 7단 ●황원준 8단
기사입력 1996년 03월 22일 18시 38분
제 7 보(101~112)=백 102는 당연한 기세. 이런 곳에서 허리를 굽혀줄 프로는 없다. 백 106을 본 흑은 흠칫 놀란다.
백 106으로는 `가', 그러면 흑 106, 백 `나'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중앙의 저지선이 무너지고 환상에서 깨어난 흑은 107 우변으로 걸음을 옮긴다. 참담한 심정. 소나기처럼 이어지던 두 기사의 손도 이곳에서 잠시 멎는다.
`제한시간 사용기록표'는 ′하니 비어 있다. 오직 백 108, 2분30초. 흑 111, 3분18초만이 칸을 채우고 있을뿐. 기록자는 친절하게도 용지 맨 위쪽에 이런 설명을 남겨두었다.
`너무 빨리 두었음.'
두 기사는 초스피드를 동반한 기세와 기세로 `죽음의 레이스'를 펼쳤음이 틀림없다.
컴퓨터 바둑프로그램이 인간을 따라잡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을까?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우수한 바둑프로그램이 10급 수준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 그 시기는 요원한 것 같다.
그런데 체스(서양장기)는 이미 컴퓨터가 사람을 앞지를 단계까지 와있는 모양이다.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탄생 50돌 기념행사로 슈퍼컴퓨터 `딥블루'와 체스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의 대결이 벌어졌는데, 카스파로프가 3승2무1패로 인류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첫게임에서 패해, 50만달러의 상금중 20%를 `딥블루'에게 빼앗겼다는 것이다.
단순한 연산능력만을 비교하면 인간의 승리가 불가사의할 정도. 천재 카스파로프가 초당 2회의 연산능력을 보인 반면 `딥블루'는 초당 1억회.
카스파로프는 `딥블루'가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둑은 체스와 또 다르다. 종횡 19선, 361로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경우의 수'도 그렇고 특히, `패'와 같은 미묘한 돌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의 두뇌가 아니고는 풀어내기 힘들다.
만일, 바둑 컴퓨터가 사람을 이겨내는 날이 온다면 아마, 그때는 컴퓨터가 사람을 지배하는 공상과학영화가 실현되는 끔찍한 시대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