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혁7단 ●황원준8단=2차예선 결승
기사입력 1996년 03월 19일 15시 20분
**흑31 방향착오로 형세 돌변
제4보 (31~48)=흑 31은 방향착오. 당연히
흑 1에 두어야
했다.
"백이 물러서서 양보를 했으면 흑 1로 받아줘야 되는 거 아냐? 그럼 백이
어려울텐데…."
검토실의 푸념 그대로
흑 1이면 백의 다음 행마가 어렵다.
흑 1 자체가 실리상 크고 오른쪽은 흑의 철벽. 잘못 움직이면 중앙의 주도권이
흑의 수중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무작정 백 2로 한칸 뛰면 흑 3.
다음 흑 A가 준선수, 흑 B가 선수인 점을 감안할때 이후 진행은 백쪽에 불쾌한
흐름이 될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흑 31이라니. 흑의 우려는 `백이 먼저 우상귀쪽을 덮어씌우면
상변 백의 형태가 크게 불어나지 않을까.'하는 정도였을 텐데.
아무튼 단 하나의 방향착오로 형세는 삽시간에 돌변했다. 포석의 중요성, 프로바둑의
준엄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손을 돌려 한걸음 먼저 갔지만 흑 39까지 일단락된 우상귀의 절충도 신통치 않다.
좌변은 백
가 칼끝처럼 마주 겨누고 있어 발전성이 없고 상변 흑 31은 홀로
외롭다.
백 40이 기민했다. 기세상 흑 43으로 눌러보았지만 백 46까지 여유있게 터를
잡으며 목소리를 키운다.
황망하게 흑 47. 우하일대에 滂리를 튼 흑일단을 보라. 애초, 20집에 이르는
실리를 제공하고 쌓은 두터움치고는 초라하기 이를데 없지 않은가.
이즈음 검토실에서는 `사제대결'이 화제의 꽃으로 만발하고 있다. 2연승으로
패왕탈환이 유력했던 이 2연패,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거창한 고토수복(古土收復)도 아닌,
변방의 성(城) 하나를 돌려받기가 이토록 힘들줄이야. 세월의 무상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