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사랑과 죽음의 대륙-중원(中原)(37)
기사입력 1996년 03월 15일 18시 10분
**석부용은 일심부 비밀요원
모용추는 낙양표국 내원의 뜰을 양문우와 나란히 거닐고 있었다.
두 남녀는 누가 보아도 한 쌍의 다정한 부부였다.
그러나 두 남녀는 각기 다른 생각에 잠겨서 천천히 걸음을 옮길 뿐 아무도 입을 열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문득 모용추가 멈추었다.
양문우가 의아하여 그녀를 바라보자 모용추는 턱짓을 하였다. 먼저 가라는 시늉이었다. 총표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적거리며 걸어갔다.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사람 마냥.
이때 바람결에 실려오듯 나직한 음성이 모용추가 서성이는 전나무 둥지 부근에서 흘러 나왔다.
"은자칠호이옵니다. 무적도 사원과 벽천무상검 남궁도가 은자사호(隱者四號)와 함께 중원으로 입성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모용추의 아름다운 눈썹이 찌푸려졌다.
`은자4호는 평소의 버릇으로 보아 사원을 유혹할 게 틀림없는데...'
아! 그렇다면 염정선라 석부용이 일심부 소속의 은자4호였단 말인가.
석부용은 일심부의 비밀요원으로서 중무연에 첩자로 침투해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모용추의 표정은 약간 미묘했다.
그녀는 질투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슨 걱정을 하는 것일까.
음성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나무둥지가 아니라 석탑 부근이었다.
"부총표두 강탁이 이틀 전부터 계속 소저를 미행하고 있습니다. 하명하여 주십시오."
모용추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상관하지마라."
강탁은 다소 멀리 떨어진 가산(假山)에 몸을 숨기고 정원을 감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요 근래에 벌어진 몇 가지 사건에 대해서 의문을 지니고 있었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건 바로 총표두 양문우의 행동이었다.
그는 확실히 변해 있었다.
강탁은 총표두가 이렇게 변한 이유가 새로 맞이한 아내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그 전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방문한 젊은 미녀...과연 그녀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양총표두가 변해 가는가?'
궁금증과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는 모용추의 추적에 나선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불행의 서막이기도 했다.
강탁이 조심스럽게 정원을 가로 지르려는 순간에 불쑥 수풀속에서 손 하나가 튀어 나왔다.
가늘고 하얀 손은 아름다웠다.
숨을 죽이고 미행하던 강탁으로서는 소스라치게 놀라운 일이었다.
비명을 내지를 겨를도 없었다.
향기가 쏟아질 것만 같던 손에서는 붉은 기류가 연기처럼 일시에 뿜어져 나왔고 그 혈무(血霧)는 강탁의 칠공(七孔)으로 파고 들었다.
아득함을 느끼는 순간 강탁은 온 전신이 마비됨을 느꼈다. 희미해지는 의식속에서 하얀 손의 주인공이 보였다. 모용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