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진석 2단 ● 장수영 9단 = 2차예선 결승
기사입력 1996년 03월 13일 17시 15분
제9보 (100~128)=안형 박탈의 묘착 100을 예상하지 못했던 흑은 난감하기 짝이 없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승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막다른 길을 향해 빠르게 줄달음치고 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폭주기관차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간 레일을 따라, 비감어린 기적을 뿌리며 사라져간다.
104. 소년은 당연한 이 한수를 두기 위해 무려 34분57초를 쏟아 붓는다. 귀는 마법의 향로와 같다. 때때로 프로들조차 예측하지 못한 기상천외의 묘수가 튀어나온다. 만에 하나 흑이 생존하는 비방이라도 숨겨져 있다면 전세는 단숨에 뒤집어지고 말터.
소년은 흑의 저항에 관련된 무수한 변화를 떠올리며 이후 사태의 추이를 면밀하게 짚어본다. 남겨진 제한시간을 모조리 이곳에 쏟아 붓더라도 바둑을 여기서 끝내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105, 107 그리고 113까지 멈칫멈칫 미련을 보이던 흑의 손길도 차츰 빨라져간다. 체념과 회한, 자책. 음울한 관념들이 급경사의 가속도를 만들어낸다. 그 끝에는 결코 원치 않았던 `패배'가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다.
흑 115는 처럼 좀더 강하게 버티는 수단이 있기는 하다. 흑 5가 탄력적인 수. 흑 11에 백이 덜컥 막으면 패.
그러나 백은 흑 11 때 막지 않고 백 12, 14로 붙여 끊는 수가 있다. A와 B가 맞보기. 이 수상전은 어떻게 해도 흑이 1수부족이다.
이후 흑은 단 1분도 사용하지 않고 노타임으로 속행, 장렬한 옥쇄의 길을 찾아 달려간다.
128. 소년은 승리의 마지막 점검에 들어간다. 8분 36초만에 떨어진 128을 본 장수영은 묵묵히 돌을 거두었다.
의 흑 1로 단수한 다음 백 2, 흑 3 이하의 수상전은 백이 손을 빼도 안된다.
< 해설.김재구 8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