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왕후 '뮤지컬사 새장열어'
기사입력 1996년 01월 05일 18시 48분
질곡의 역사 속에 비운의 삶을 살다간 민비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 ( 원작, 김희갑 각색, 윤호진 연출)
지난해 12월 3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연 이 무대는, 우리 창작 뮤지컬을 세계수준에 가깝게 끌어올려주고 있는 수작이다.
장중한 서곡이 흐른 뒤 조선왕조 5백년을 상징하는 경복궁의 미니어처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여기에 당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빠른 템포로 개화기 우리나라의 현실과 강대국과의 갈등 그리고 조선 내부의 정치적인 상황이 오페레타 형식의 노래에 실려 객석에 전달된다.
이 뮤지컬은 인물을 통해 역사를 조명하기 보다는 역사 속에서 나약하기 짝없는 인물들의 인생을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즉 열강들과의 대립 속에 조선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국모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불에 태워지는 슬프고도 욕된 역사의 현장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광복 50주년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비자금 사건'으로 얼룩지면서 퇴색해버렸다. 그러나 정부주도가 아닌, 민간단체의 이 뮤지컬은 의롭게 광복 50주년의 대미를 장식한 셈이다.
`명성황후'는 우리 뮤지컬사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그것은 스케일면에서나, 완성도 면에서나 세계적인 작품들에 비해 그리 뒤떨어지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박동우의 무대미술은 눈부시다. 극장의 상하-좌우를 매우 짜임새 있게 구사, 세트의 기능성과 운동성을 마음껏 살려내 전체적으로 세련된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김희갑, 양인자 부부의 작곡과 작사는 장중함과 노련미가 잘 조화되어 감동적인 음악을 선사했으며 의 사실감 넘치는 의상과 서병구의 안무도 눈여겨 볼만 했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 또한 볼만하다. 명성황후 역의 는 톱 스타답게 극 전체를 온몸으로 떠받들면서 뛰어난 가창력으로 객석을 휘어잡았다.
고종역으로 등장한 영화배우 은 참신했으며 홍계훈역의 김민수는 주연급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성악가 윤치호 권흥준의 뮤지컬 데뷔도 인상 깊었다.
다만, 전체적으로 이 작품을 감싸안는 테마곡이 없었다는 점과 음향장치의 문제로 인해 대사의 객석 전달이 미흡해 아쉬움을 남겼다. 9일까지. 580-18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