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우승 1순위 후보로 지목됐던 도미니카공화국이 탈락해 두 팀은 정상을 향한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일본은 지난 16일(이하 한국시각) 도쿄돔에서 열린 8강전에서 이탈리아를 9대3으로 꺾고 먼저 준결승에 진출했다.
다음은 미국 차례다. 19일 오전 8시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D조 1위 베네수엘라와 4강행 티켓을 다툰다. 베네수엘라는 조별리그에서 도미니카공화국과 푸에르토리코를 잇달아 격파하며 이번 대회 최대 파란을 일으킨 팀이다. 일본에 비해 미국은 힘겨운 8강전을 벌여야 한다.
미국 주장 마이크 트라웃은 조별리그에서 맹타를 터뜨리며 위기의 팀을 구해냈다. 16일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선취점에 이어 1-2로 뒤진 5회 상대 투수 야시에르 에레라의 바깥쪽 커브를 좌전안타로 연결, 주자 2명을 모두 불러들이며 재역전승을 이끌었다.
만약 미국이 결승에 올라 우승할 경우 MVP는 트라웃이 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그는 작년 7월 대표팀 주장을 수락한 뒤 친분있는 메이저리거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함께 하자"며 주저하는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무키 베츠, 폴 골드슈미트, 놀란 아레나도가 그들이다.
트라웃은 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이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라며 "경기를 하러 나가면 즐거운 시간이 될 거라는 걸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재밌을 줄 몰랐다"며 여유와 자신감을 내보였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다.
오타니는 로테이션 상 더 이상 마운드에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타석에서는 계속해서 불방망이를 휘두를 태세다. 이날 이탈리아전에서는 3번타자로 들어가 4타수 1안타 1볼넷 2득점으로 활약했다. 이번 대회 5경기에서 타율 0.438(16타수 7안타) 1홈런, 8타점, OPS 1.438을 마크 중이다.
1라운드와 8강전을 치르는 내내 도쿄돔은 오타니의 무대였다. WBC의 열기가 오타니로 인해 배가 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일본이 우승했는데 오타니가 MVP가 아니라면 넌센스다.
대회 주최측인 MLB는 최근 미국의 8강 대진 스케줄을 슬쩍 바꿔 물의를 빚었다. 중계 시간과 흥행 때문이라고 했지만, 준결승에서 일본을 피할 의도가 다분해 보이는 게 사실. 어차피 일본을 넘지 못하면 우승하지 못한다.
이번 대회 시작 전 최고의 볼거리로 트라웃과 오타니의 맞대결이 진작에 언급됐다. 그 가능성이 결승 무대 밖에 없다. 미국이 이기면 트라웃, 일본이 이기면 오타니가 MVP가 되는 분위기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