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규야 가자"에 불끈, 데뷔 첫안타가 싹쓸이 3루타라니, 무명의 신예 밀어붙인 벤치의 뚝심

2022-06-24 09:25:56

프로 데뷔 후 가장 기쁜 밤, 인터뷰 하는 이병규. 대구=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KBO 홈페이지에 '이병규'를 검색하면 3명의 선수가 나온다.



잘 알려진 두 사람, LG 레전드 출신 이병규 코치(48)와 '작뱅'이라 불리던 롯데 이병규 코치(39)다.

나머지 하나는 잘 안 알려진 현역 선수다. 키움 외야수 이병규(28)가 주인공. 2017년 히어로즈에 2차 7라운드 67순위로 입단한 내야수. 신고선수로 머물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외야수로 변신해 2021시즌을 퓨처스리그에서 보낸 그는 올시즌 정식 선수로 전환하고 1군 무대에 데뷔했다. 등번호를 레전드 이병규의 넘버이자 LG 영구결번인 9번으로 바꿔 달았다. 외야수로 성공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 실제 그는 "이병규 코치님 처럼 잘 하고 싶어서 작년에 9번을 마침 달 기회가 있길래 36번에서 9번으로 바꿔 달았다"고 설명했다.

설렘 속에 시작한 올시즌. 개막 엔트리에 들며 대주자와 대수비 요원으로 나섰지만 이번 콜업 전까지 14경기에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 선발 출전은 4월7일 고척 LG전 두 타석이 전부였다.

퓨처스리그 31경기에서 0.372의 높은 타율과 12타점. 매서운 타격 실력을 1군에서 입증할 기회가 찾아왔다.

22일 시즌 세번째로 콜업된 이병규는 23일 삼성전에 8번 좌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장맛비를 절묘하게 피해가며 지친 야수진에 휴식을 부여한 덕분에 잡은 기회. 경기 전 키움 홍원기 감독은 "퓨처스리그에서 타격이 좋다는 보고를 받고 어제 올렸다"며 "선순환 활력소가 될 선수 자원으로 보고 있다"고 기대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너무 강한 투수를 만났다. 리그 최고의 체인지업 장인 원태인이었다. 첫 두 타석은 전혀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2회 첫 타석 체인지업에 3구 삼진, 4회 두번째 타석도 체인지업에 힘 없는 투수 앞 땅볼로 물러났다.

1-0으로 앞선 6회초 빅찬스가 그 앞에 걸렸다.

1사 2,3루가 되자 삼성 벤치는 이지영을 고의 4구로 걸렀다. 원태인의 체인지업에 쩔쩔 매던 이병규의 이미지를 고려했다.

하지만 키움 벤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평소 "나는 선택만 할 뿐 증명하는 건 선수의 몫"이라며 "언제나 가능성이 있는 선수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신념의 사령탑. 뚝심 있게 새 카드를 절체절명의 순간 밀어붙였다.

벤치에는 일발장타 김웅빈도 있고, 노련한 이용규도 있었지만 홍 감독은 이병규를 바꾸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홍 감독의 선택이 옳았다. 이병규는 3구째 126㎞ 높은 체인지업을 당겨 살짝 전진수비 하던 중견수 김현준의 키를 넘는 싹쓸이 3루타로 화답했다. 같은 체인지업에 세번 연속 당하지 않았다. 허탈한 원태인의 표정 뒤로 3연전 싹쓸이를 알리는 결정타였다. 프로데뷔 첫 안타가 결정적인 순간 극적으로 터지며 6대1 승리가 완성됐다.

경기 후 이병규는 "변화구를 많이 던져서 더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마침 실투가 왔다"며 "희생 플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안타가 돼서 깜짝 놀랐다"며 "(대타로 바뀔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는데 타석에 나가기 전에 감독님께서 '병규야 가자'고 응원해주시길래 믿음에 결과로 보답해 드리고 싶었다"고 짜릿했던 순간을 복기했다.

사령탑의 믿음에 힘차게 배트를 돌리며 화답한 늦깎이 신예. 벤치의 뚝심 속에 또 하나의 원석이 발굴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올해가 마지막이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에 초반에는 압박감도 많이 들고 조급했는데, 지금은 좀 생각을 여유 있게 '될 대로 되라, 뭐 어때 그냥 즐기자'라는 생각을 하고 하면서 플레이를 하려고 하고 있어요."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 둔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시작이 열리기도 한다.

그가 꿈꾸는 No9 레전드 이병규나 뒤늦게 만개한 외야수 유한준이 되지 말란 법은 절대 없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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