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상슈퍼컴 5호기 첫 공개…'1초에 5경2천조번 연산'

2021-11-25 14:41:43



"내일 서울 아침 기온이 영하 5도로 떨어지고 5㎜가량 비가 내리겠습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에서 내일 날씨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 유체역학 방정식을 풀어내 미래의 대기상태를 추정해내기 때문이다.
기상학자들이 골방에서 머리를 맞대고 이 방정식을 푸는 것은 아니다. 일기예보를 위한 방정식, 즉 수치예보모델을 돌리는 것은 국가기상슈퍼컴퓨터(기상슈퍼컴) 몫이다.



24일 충북 청주시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에서 기상슈퍼컴 5호기를 마주했다.

지난 6월 국내에 도입이 완료되고 8월부터 본격 운영된 기상슈퍼컴 5호기가 언론에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 평범한 캐비닛 같은 기상슈퍼컴 5호기…1초에 5경여번 계산
500억원대(2019년 회계연도 결산 기준)로 정부 보유 물품 가운데 가장 비싼 것으로 꼽히는 기상슈퍼컴 5호기 첫인상은 '별것 아니네'였다.

겉모습은 높이가 성인 남성 키를 조금 넘는 검은 철재 캐비닛이 일렬로 늘어선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속은 단연 특별했다.
원래 슈퍼컴은 성능순위가 세계 500위 안에 드는 컴퓨터를 말한다.

성능이 더 좋은 컴퓨터가 등장해 성능순위가 500위 밖으로 밀려나면 그땐 슈퍼컴으로서 '지위'를 잃는다.

현재 한국엔 슈퍼컴이 총 7대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설치한 'SSC-21'(성능순위 11위)이 가장 성능이 좋고 기상슈퍼컴 5호기 최종분이 그다음이다.

기상슈퍼컴 5호기는 제일 먼저 들어온 초기분 1기(이름 두루)와 나중에 들어온 최종분 2기(마루와 그루)로 구성됐다.

최종분 2기의 성능순위가 각각 27위와 28위다.
기상·기후 분야 슈퍼컴 중엔 올해 상반기 기준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다.

기상슈퍼컴 5호기의 연산성능은 이론적으로 최대 52.9PF(페타플롭스)다.

플롭스는 '1초간 수행할 수 있는 부동소수점 계산 횟수'를 말한다.

즉 기상슈퍼컴 5호기는 1초에 5경2천900조번의 계산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선배'인 기상슈퍼컴 4호기보다 연산성능이 8.8배 뛰어나다.

기상슈퍼컴 연산성능이 중요한 것은 연산이 빠르면 기상청 예보관들이 일기예보를 내놓을 때 필요한 예측자료도 빨리 생산되고 그만큼 예보가 정확해지기 때문이다.

최신 슈퍼컴도 도입 3~4년 후엔 성능순위가 200위권대로 떨어지고 5년 정도가 지나면 더는 슈퍼컴이라고 부르기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다.
2015년 설치된 기상슈퍼컴 4호기도 2016년엔 성능순위가 46위(누리)와 47위(미루)였으나 지금은 251위와 252위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성능순위가 밀리는 슈퍼컴의 특성을 모르면 자칫 5년마다 수백억 원을 들여 슈퍼컴을 새로 사는 것이 예산 낭비처럼 보일 수 있다.
기상슈퍼컴으로 역할을 다한 슈퍼컴은 보통 다른 기관에서 새 삶을 산다.
기상슈퍼컴 3호기는 고등과학원과 농업과학원으로 무상 이전됐다.
곧 5호에 임무를 완전히 넘길 4호기도 농업과학원으로 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슈퍼컴 운영비가 만만치 않아 인수자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기상슈퍼컴 5호의 경우 전기요금만 연간 60억원에 달한다.

또 슈퍼컴에서 나오는 열을 식힐 때 필요한 냉수를 만드는 냉동기와 정전에 대비한 비상발전기 등 기반시설을 갖추는 데에는 120억원이 들었다.

◇ 우리 사정에 맞는 '한국형수치예보모델' 안착이 임무

현재 기상슈퍼컴 5호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한국형수치예보모델'(KIM)의 안착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 지구가 대상인 한국형 모델은 2011년 개발이 시작돼 작년 4월 개발이 완료되고 운영을 시작했다.
자체 전 지구 수치예보모델을 가진 국가는 한국까지 9개국밖에 안 된다.

한국도 원래 일본과 영국 기상청 수치예보모델을 사용해왔다.

기상청은 '영국 기상청 통합모델'(UM)과 한국형 모델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UM을 한국형 모델로 완전히 대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형 모델 예측성능이 압도적으로 우수한 것은 아니다.
수치예보모델은 '기단의 위치'를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형 모델은 일본 모델보다는 낫고 영국과 미국 모델엔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상청은 한국형 모델 성능이 9개국 모델 중 6위 정도라고 본다.

다만 한국형 모델은 언제든 한국의 사정에 맞게 개선할 수 있기에 곧 성능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이처럼 뛰어난 성능을 가진 기상슈퍼컴 5호에 더 개선된 수치예보모델을 더한다면 예보는 완벽해질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는 못하다.

수치예보모델은 유체의 움직임을 표현한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사용하는데 이 방정식은 일반적인 해(解)가 존재하는지 아직 증명되지 않은 난제를 안고 있다.
슈퍼컴도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답을 구하진 못하고 근삿값만 찾아낸다.

날씨에 변수가 너무 많은 점과 예측의 기반이 되는 관측자료가 완벽하지 못한 것도 완벽한 일기예보가 불가능한 요인이다.

jylee24@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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