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없이 가버린 전두환, 너무 원통해"…오월어머니의 눈물

2021-11-24 14:12:35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24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김점례 씨가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아들의 묘소를 찾아 눈물 흘리고 있다. 김씨는 아들 묘소에서 "전두환이 잘못했다는 한마디조차 없이 떠났다. 너무나 원통하다"며 통곡했다. 2021.11.24

"'잘못했다, 용서해달라'는 한마디를 들으려 우리가 그렇게 애썼는데 그 말 한마디를 안 하고 갔어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 이틀째를 맞은 24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는 아들의 묘소를 찾은 김점례(84) 씨의 통곡이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살아있었다면 2주 전 64번째 생일을 맞았을 아들이다.

김씨의 아들 장재철 열사는 부상자와 사망자를 자동차로 실어나르며 1980년 5월 항쟁에 참여했다.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운전 기술로 '시민의 힘을 모아달라'는 목소리에 응했다.

수많은 생명이 저문 나날 속에서 김씨의 아들도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겼다.

김씨는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했고 집으로 불쑥 찾아온 손님이 사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도청 앞 상무관으로 가보라는 말을 전했다.


뚜껑이 절반가량 열린 관이 상무관 마룻바닥을 빼곡히 채우다시피 세 줄로 놓여 있었다
관을 하나하나 살펴본 김씨는 총탄에 맞아 얼굴의 형체가 사라져버린 아들 또래 청년의 시신 앞에서 한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다.

'너는 어쩌다가 이렇게 얼굴을 잃어버렸느냐.'
예비 며느리와 딸이 저 사람은 아닐 거라며 팔을 잡아끌어도 어머니 김씨의 마음은 그 청년 곁을 떠나지 못했다.

이튿날 김씨의 딸이 상무관을 홀로 다시 찾아갔다.

눈, 코, 입이 사라져버린 시신의 얼굴 한편에 가족들만 알아볼 수 있는 작은 상처 하나가 남아있었다.




아들과 함께 항쟁에 참여한 동료들은 도심 외곽 벽돌공장에서 부상자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다가 숨어있던 계엄군의 총탄에 맞았다고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시신 곳곳에는 총알 자국이 뚫려있었다.

아들은 열흘간 이어진 항쟁의 아홉째 날 참혹한 주검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너무나 너무나 원통하다. 전두환이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만 남겼어도 그 한이 요만치는 풀렸을 거 같은데 그냥 가버렸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평일인데도 5·18묘지를 찾아온 시민 참배객이 김씨의 곁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기구한 사연에 귀 기울였다.




이날 5·18묘지에는 서울, 부산, 대구, 울산, 충남 논산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참배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씨가 사망한 전날에는 비와 추위가 찾아온 궂은 날씨에도 참배객 280명이 5·18묘지를 다녀갔다.

참배객은 5·18묘지 들머리에 놓인 방명록에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이제야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편히 잠드소서' 등 추모글을 남겼다.

hs@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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