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슈터, 조성민의 마지막 인사 "열심히 농구한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어요"

2021-05-27 17:23:20

스포츠조선DB

[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농구 정말 열심히, 성실히 했어요. 그런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어요."



정든 코트를 떠나는 조선의 슈터, 조성민(38)의 인사는 마지막까지 '조성민답게' 진지하고 성실했다.

국가대표 슈터 조성민이 은퇴를 선언했다. 2006년 프로에 입문한지 15년 만이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은 조성민은 러브콜을 뒤로 한 채 은퇴를 결정했다.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1년 더 뛰는 게 큰 의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요."

시작은 미약했다. 전주고와 한양대 출신 조성민은 2006년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8순위로 부산 KTF(현 부산 KT)에 합류했다. 데뷔 시즌 53경기를 뛰었지만, 평균 3.6득점에 그쳤다.

잠재력이 폭발한 것은 전창진 감독(현 전주 KCC)과 만난 뒤였다. 전 감독은 2009년 KTF의 지휘봉을 잡았다. 조성민의 '슈터본능'을 깨워줬다. 조성민은 2009~2010시즌 평균 9.7점을 넣으며 가능성을 보였고, 2010~2011시즌에는 평균 13.8점을 꽂아 넣으며 에이스로 거듭났다. 그해 조성민은 프로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프로에 처음 와서는 '어떻게 하면 형들을 따라갈 수 있을까'만 생각했어요. 열심히 하다보니 운 좋게 기회가 온 것 같아요. 전 감독님을 만나서 농구를 제대로 배웠죠. 엄청 힘들었어요. 욕도 많이 먹었고요.(웃음) 돌아보면 그때 힘들었지만 가장 재미있었고, 농구가 가장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전 감독님은 농구할 때는 굉장히 엄하시지만, 코트 밖에서는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아버지 같은 분이시죠."

소속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조성민은 국가대표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팬들은 그의 이름 앞에 '조선의 슈터'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아요. 정규리그 우승, 한 경기에서 3점슛 10개 기록 등이요. 대표팀에서의 기억도 강렬한데 아시안게임 금메달 땄을 때가 생각나요. 그때 손가락 부상에 무릎도 좋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홈에서 열린 경기에 만원관중이 오셔서 응원해주셨잖아요. 아픈 것도 잊을 만큼 열심히 뛰었어요."

영광의 순간. 15년의 프로 생활. 결코 쉽게 얻은 게 아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어요. 30년 가까이 했네요. 하지만 농구를 즐기면서 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농구에 있어서 만큼은 진지했어요. 열심히, 성실히 했어요. 잘할 때는 더 잘하려고 긴장했어요. 그냥 매 경기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승리하려고 하다보니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아등바등했는데 통합우승을 못하고 떠나서 아쉬워요."

코트 위에서 그 누구보다 악착같이, 이를 악물고 뛰었던 조성민. 그는 자신의 농구인생에 잠시 쉼표를 찍는다. "주변에서 '아쉽다', '축하한다' 등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개인적으로는 축하한다고 해주시는 게 더 듣기 좋았어요. 언젠가는 농구인으로서 도움을 드려야 할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일단 지금은 좀 쉬려고요. 생각해보니 이렇게 쉰 적이 없었어요. 딸이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미안했어요.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이 적었구나' 싶어서요. 쉬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죠. 가족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그동안 많은 응원 보내주신 팬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팬들께 열심히 한 선수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어요."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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