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역사 새로 쓴 오십대 노장의 열정, 사라져 가는 것들에게 던진 울림의 메시지

2021-05-25 07:14:21

May 23, 2021; Kiawah Island, South Carolina, USA; Phil Mickelson hugs caddie Tim Mickelson after he putts out on the 18th hole and wins the PGA Championship golf tournament. Mandatory Credit: Geoff Burke-USA TODAY Sports TPX IMAGES OF THE DAY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 "보고 싶다. 곧 갈게. 사랑해."



퇴물 취급을 받던 오십대 골퍼의 반란. PGA 역사를 다시 쓴 필 미켈슨(51)은 사상 첫 50대 메이저 우승을 확정한 순간 아내 에이미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무시무시한 장타의 시대. 청년들과 비거리 경쟁은 우위를 점하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젊은 골퍼들이 가지지 못한 그 무엇이 있었다.

강한 바람과 험난한 코스 세팅. 모두가 당황하며 스스로 무너질 때 미켈슨의 경험과 확신은 자신을 지켜주는 힘이었다. 그 역시 힘겨웠지만 노련한 쇼트게임으로 버텼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지도 않았다. 실수를 인정했고, 현재에 집중했다. 결과는 짜릿했다.

1타를 잃었지만 오히려 스무살 어린 후배 브룩스 켑카(31) 등 경쟁자들은 더 많은 것을 잃었다.

홀 이동 과정에서 장애가 있는 갤러리에게 땅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전하는 따스한 마음과 평정심을 유지한 품격의 골퍼. 그가 PGA 역사를 다시 썼다.

미켈슨은 24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인근 키아와 아일랜드 골프리조트 오션코스(파72)에서 열린 메이저대회 PGA 챔피언십(총상금 1200만달러) 최종 라운드에서 1오버파 73타를 기록, 4라운드 합계 6언더파 282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1970년 6월생으로 만 50세 11개월의 미켈슨은 오십대 최초의 메이저 우승을 차지하며 53년 만에 메이저대회 최고령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종전 메이저대회 최고령 우승 기록은 1968년 PGA챔피언십에서 줄리어스 보로스(미국)가 세운 48세 4개월이었다.

메이저대회가 아닌 일반 PGA 투어에서도 50세를 넘어 우승한 케이스는 단 7번째에 불과하다.

미켈슨은 2019년 AT&T 페블비치 프로암 우승 2년 3개월 만에 다시 한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통산 45승, 메이저대회 6승째를 달성했다. 현역 선수로는 82승의 타이거 우즈(미국) 다음으로 많은 승리. 메이저대회 우승은 8년 만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정상급 프로골퍼. 그에게도 세월의 무게는 극복하기 힘든 장애물이었다.

최고의 순간은 어느덧 추억의 저편으로 아스라히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노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젊은 괴력의 장타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두배의 노력 뿐이었다.

2013년 디오픈 이후 8년 만의 메이저 우승. 그는 "사실 나는 늘 이런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성적으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더 열심히 노력한 것이 오늘 우승의 원동력"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노력의 과정은 치열했다. 기술적 훈련이 전부는 아니었다. 험난한 투어를 버텨내기 위한 체력 관리를 위해 먹는 것 조차 철저히 통제했다.

"체력적으로 더 열심히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라운드 내내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먹는 음식의 양도 많이 줄이면서 즐거움을 희생했죠."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명상이 큰 도움이 됐다.

"외부 잡음으로부터 평정심을 유지하는 효과가 있어요. 물론 정신적인 부분이 전부는 아니죠. 하지만 제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실제 그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큰 압박감과 싸워야 했다.

대회 우승자에게 주는 '워너메이커 트로피'를 품에 안은 뒤 인터뷰에서 그는 "정말 믿기 어려운 날"이라며 "TV나 전화기도 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룬 세계 최고의 골퍼. 그를 다시 정상으로 이끄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이런 최고 무대에서 경쟁하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노력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업을 진심으로 즐기는 마음, 성취의 짜릿한 순간, 이를 함께 나누는 가족.

'품격의 신사' 미켈슨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삶의 세 가지 의미다.

구름같던 갤러리 사이를 모세의 기적처럼 통과해 마지막 그린에 오른 노장 골퍼. 우승을 확정지은 후 그는 캐디를 맡았던 동생 팀과 오랫동안 포옹을 풀지 않았다. 팀은 미켈슨이 초반 6개 홀에서 고전할 때 "우승하고 싶으면 스윙부터 제대로 하라"는 일침으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한 주인공.

여기저기 축하인사를 받은 뒤 가장 먼저 아내에게 전화를 한 미켈슨은 "당신의 사랑과 응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며 사랑을 고백했다. 그에게 가족은 오늘의 도전을 가능케 해준 힘이었다.

오십대의 반란. 메이저 우승은 미켈슨만의 것이 아니었다.

나이 때문에, 부상 때문에 잠시 이정표를 잃고 방황하던 전 세계 골퍼들에게 커다란 용기를 불어넣은 귀감이었다. 교통사고 후 재활 중인 타이거 우즈도 SNS를 통해 자신의 성장에 자극이었던 선의의 라이벌에게 진심어린 축하 인사를 건넸다. 다시 한번 일어서려는 '골프 황제'에게도 특별했던 순간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장면의 하나가 될 겁니다. 어쩌면 현실적으로 이번 우승이 나의 마지막 우승이 될 가능성이 크겠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나 다른 선수들이 늦은 나이에도 이런 결과를 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이번 우승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면 좋겠습니다."

골프를 넘어 무너지는 자존감 속에 삶의 의미를 상실하며 사라져 가는 각계각층의 수많은 '베테랑'에게 미켈슨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다. '삶은 끊임 없는 도전'이란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운 쾌거.

미켈슨의 도전도 이어진다. 노장의 다음 목표는 5년 출전권을 확보한 US오픈 우승을 통한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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