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책특권이 뭐길래…부당해고 사건에도 "조사 불응"

2021-05-02 08:27:09

제작 이소영(미디어랩)

주한 이라크 대사관이 부당해고·임금체불 등 불법행위를 하고도 면책특권을 내세워 당국의 조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최근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의 점원 폭행사건 등 유사 사례가 발생한 상황에서 외교공관의 위법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놓고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야간 업무 지시도 이행했는데…부당해고 억울"
2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은 약 5년간 주한 이라크 대사관저에서 요리사로 일한 방글라데시인 F(43)씨가 퇴직금과 시간외 수당 등을 지급받지 못한 채 부당해고됐다는 내용의 진정을 지난해 9월 접수했다.

특별사법경찰관인 근로감독관이 조사에 나섰지만, 대사관 측은 몇 달째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F씨는 2014년 4월∼2018년 5월과 2019년 7월∼2020년 3월 대사관저 요리사로 근무했다. 근무시간은 매일 오전 6시 30분에서 오후 11시까지였고, 금요일 오후가 유일한 휴무시간이었으나 파티 등 일정이 잡히면 그마저 쉬지 못했다고 한다.

F씨에 따르면 작년 3월 초 이라크 대사 부인이 목요일 오후 10시께 그를 불러 "(금요일이 쉬는 날이니) 내일 음식을 다 만들어 놓으라"고 지시했다.

퇴근시간까지 끝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F씨가 "닭과 고기를 녹이려면 몇 시간이 걸리는데 지금 어떻게 하냐"고 되묻자 부인은 "한국에 있고 싶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윽박질렀다. F씨는 결국 밤 12시를 넘겨서까지 음식을 만든 뒤 퇴근했다고 한다.

며칠 뒤 F씨는 대사관 직원으로부터 "사모님이 네가 만든 음식을 마음에 안 들어 한다.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그만두라"는 취지의 구두 해고통지를 받았다. 대사관 측은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비자를 살려놓겠다"며 F씨의 동의 서명을 받았다.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일자리를 찾던 F씨는 몇 달 뒤 자신의 퇴사 사유가 '무단이탈'로 신고돼 출국명령이 내려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과태료 200만원 처분도 받게 됐다.

같은 해 9월 F씨는 최미숙 노무사의 도움으로 노동청에 진정을 내고 법적 구제를 요청했다. 최 노무사가 근무내역을 토대로 F씨가 받지 못한 월 시간외 수당, 해고예고수당, 퇴직금, 연차수당 등을 계산한 결과 미지급 총액은 1억589만7천959원이었다.

F씨는 "퇴직금도 받지 못했고, 월 급여도 근무시간보다 훨씬 적은 최저임금 수준인데다 주휴일이나 연차휴가 등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며 "퇴근시간 후인 야간에 일을 시키고 문제제기했다고 해고하는 것은 지나친 갑질"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노동법에 따라 임금과 퇴직금을 정당히 받고 안정적인 곳에 취업하고 싶다"고 했다.




◇ 노동청 진상확인 조사 못 해…"형사절차 진행 어려워"
F씨의 진정을 접수한 서울서부지청은 진상 확인을 위해 대사관 측에 여러 차례 출석을 요구했으나 수개월째 협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사관 측은 최근 서부지청에 "면책특권을 행사할 것이며 출석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당국의 한 관계자는 "면책특권을 향유하는 공관원들이 특권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면 해당 노동청이 형사절차를 진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건 해결에 어려움을 겪던 서부지청은 최근 검찰에 수사 지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미숙 노무사는 "F씨는 한국에서 채용된 근로자인데도 대사관의 면책특권으로 사각지대에 놓였다"며 "외교부와 노동부가 국내에서 채용된 근로자의 노동권을 보호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viva5@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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