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코스를 거친 스포츠인들에게는 남다른 '승부욕'이 존재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쟁 상대를 이기려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밴 성향이다. 이런 승부욕이 한번 발동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끝장을 봐야 한다.
대한민국 장애인사이클 대표팀을 이끄는 이영주(46) 감독이 비장애인 엘리트 선수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장애인 대표팀을 맡게 된 결정적 계기도 바로 이런 '승부욕' 때문이다. 엘리트 코스를 거쳐 경륜 선수로 안정된 삶을 보내던 이 감독이 열악하던 장애인 사이클에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헌신하게 만든 결심, '여기서 더 나빠질까. 승부를 걸어보자!'였다. 반대도 많았고, 의혹의 시선도 따가웠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잘 책임질 수 없는 환경 때문에 후회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장애인 올림픽인 '패럴림픽' 금메달 목표에 심장이 뛴다.
전라고-용인대를 거친 이 감독은 고교시절 전국체전과 전국사이클선수권에서 2~3위권에 입상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았다. 대학교 졸업 이후에는 경륜 선수(6기)로 변신해 직업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던 그가 '장애인사이클'과 인연이 닿은 건 2013년. 이 감독은 "당시 경륜 선수로 활동하던 중에 재능 기부 형식으로 장애인 사이클 대표팀 훈련을 돕게 됐죠. 시각 장애인 선수를 리드하는 파일럿으로 나갔는데,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어요. 선수들은 열심히 하고 싶어하는데, 방법을 잘 모르고 있었죠. 선수 출신이 아닌 분들이 대표팀을 맡아 귀동냥으로 선수들을 가르치는 형편이었으니까요"라며 장애인사이클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감독이 한국 장애인 사이클을 이끌게 되리라고는 그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이 감독의 열정이 선수들과 대한장애인사이클연맹을 움직였다. 이내 권기현 전 장애인사이클연맹 회장으로부터 '전임지도자'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전임이지만, 월급은 따로 없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라면 당연히 거절해야 할 제안. 그러나 이 감독은 이를 수락했다.
▶경쟁력 찾은 대표팀, 도쿄올림픽 금, 은 노린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표팀 전임 코치로 나선 이 감독은 그 해 11월, 대한장애인체육회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대한장애인체육회장상 지도자상을 받는다. 그간의 노력과 헌신이 조금이나마 보상받게 된 계기였다. 이 감독은 "처음에는 월급도 안나오니까 아내와 부부싸움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좋은 날이 올거야. 믿어줘'라고 말하며 속으로는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다짐했죠"라며 어려웠던 시기를 추억했다.
그 결실이 서서히 맺어지고 있다. 2014 인천 아시안패러게임과 2018 자카르타 아시안 패러게임 대표팀 코치로 활약하던 이 감독은 2019년부터 전임 감독으로 선수들의 훈련을 이끌고 있다. 비록 2016 리우 패럴림픽 때는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지만, 2020 도쿄패럴림픽 때는 대표팀 감독으로 선수들의 금빛 레이스를 지휘하고 있다.
이 감독은 "예전에 비해서는 지원도 많아지고, 관심도 늘어났지만 여전히 장애인 사이클은 비관심 중의 비관심 종목인 게 사실이죠. 실업팀도 생기고, 국제대회도 열리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기존 사이클대회에 장애인 부분만 신설돼도 좋겠습니다. 패럴림픽 메달을 따면 관심도 더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거죠"라며 마음속 희망을 내보였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