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계란값 폭등해도 구경만" AI 살처분 농가들의 하소연

2021-01-28 08:11:00

[연합뉴스 자료 사진]

충북 음성군 삼성면에서 산란계 농장을 운영하는 A(43) 씨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닭과 계란 가격이 폭등했지만 특수를 누리기는 커녕 도산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그는 최근 4만여마리의 닭을 모두 살처분했다. 그의 농장이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농장으로부터 3㎞ 이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AI를 막기 위해 방역설비를 갖추고 소독을 강화하는 등 사력을 다했지만 이웃 농장 바이러스 침투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017년 전국을 강타한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달걀값이 폭락하면서 시련을 겪은 그는 가족·친지의 돈 4억원을 끌어모아 간신히 재기를 꿈꾸던 중이었다.

그러나 좀 허리를 펼 것으로 기대하던 상황에 예기치 못한 살처분이 이뤄지면서 그는 또다시 벼랑에 선 처지가 됐다.

살처분 보상금을 받긴 하지만 그가 투자한 돈에는 어림 없다. 당분간 닭을 입식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가 감내해야 하는 손실은 훨씬 크다.

A씨는 "아무리 열심히 방역을 해도 다른 농장에서 AI가 발생하면 함께 죽으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살처분 대상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하면서 가금류 농장들이 공멸할 처지에 놓였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음성에서는 지난달 7일부터 지난 18일까지 5곳의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24개 농장의 가금류 235만9천마리가 살처분됐다.
발생 농장은 물론 반경 3㎞ 안에 있는 19개 농장들도 예외 없이 기르던 닭과 오리 119만2천여마리를 예방적 살처분했다.
'최악의 AI'로 기록된 2016년 이 지역에서는 85개 농장에서 무더기 확진이 나와 391만9천마리가 살처분됐다.

그때와 비교해 이번은 5개 농장 발생에 불과한데도 살처분 가금류는 당시의 40%에 달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수평적 전파를 막겠다며 2018년 '조류 인플루엔자 긴급 행동지침'을 통해 살처분 범위를 반경 500m에서 3㎞로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다.

거리로는 6배, 면적으로는 36배가 늘면서 AI 발생에 따른 살처분 가금류가 급증했다.




이번 겨울 AI가 처음 발생한 작년 10월 1일부터 이달 24일까지 바이러스 전염을 차단하기 위해 전국 74곳에서 살처분된 가금류는 2천만마리가 넘었다.
이 중 계란 가격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산란계는 1천14만마리가 처분돼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 여파로 계란 수급이 깨져 가격은 10개(특란) 기준 2천187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71.9%, 한 달 전보다 41.7% 치솟았다.

육계 가격도 지난 22일 기준 ㎏당 5천859원으로 한 달 전보다 13.9% 뛰었다.

농민들은 AI 확산을 선제적으로 막겠다는 취지는 이해하면서도, 살처분 범위를 축소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나치게 확대된 살처분 기준으로 인해 농민들은 줄도산 위기에 놓였고, 소비자는 닭과 계란값 폭등의 직격탄을 맞는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게시판에도 이 같은 농민들의 울분 섞인 주장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AI 과도한 살처분 규정으로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농민 B씨는 "지금과 같은 규정을 유지하면 양계산업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지난 2년간 농장 수익금의 12배에 해당하는 24억원으로 AI 방역설비를 갖춰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선진 방역형 동물복지 농장으로 지정받았다"며 "철저한 방역시스템을 가동했는데도 발생농장 3㎞ 안이라는 이유로 일괄적 살처분하는데 누가 방역설비를 구축하고 엄동설한에 매일 소독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발생지에서 1.5∼3㎞ 거리의 농장은 3주간 살처분을 유예하고 감염이 없을 때는 (살처분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현실적인 폐업 보상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다른 농민도 청원 글에서 "어느 나라도 반경 3㎞까지 무자비하게 살처분하지 않는다"며 "동물학대이자 막대한 사회적 피해이며 근본적인 AI 해결책도 못 된다"고 주장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지금의 살처분 규정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음성군의 한 공무원은 "AI가 발생한 삼성면 농장에서 산 너머에 있는 3개 농장은 수평적 전파위험이 없었고 현장을 조사한 가축방역관도 동의했으나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당국 방침에 따라 모두 살처분했다"며 "살처분 규정이 너무 획일적"이라고 지적했다.

살처분 대상이 늘면서 지자체의 재정부담도 커졌다.

음성군은 이번 겨울 들어 살처분 비용 25억원과 방역비 7억6천만원을 집행했다.
보상비 190억원 가운데도 정부(80%)와 충북도(10%)를 부담분을 뺀 19억원을 분담해야 한다.

조병옥 음성군수는 "올해 편성한 재난 대응 예비비 35억원 가운데 25억원을 AI 살처분 비용으로 집행했다"며 "10억원 밖에 남지 않았는데 작년처럼 장마철 수해가 나면 복구재원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음성군이 군세 수입이 한 해 1천40억원인데 정부와 충북도 추진사업 분담금 지출하면 실질적인 가용재원이 많지 않다"며 "25억원을 살처분 비용으로 지출하는 것도 큰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음성군은 최근 정부에 "살처분 범위가 커 농가 피해가 막대하다"며 "역학조사와 지리적 조건을 따져 수평적 전파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면 해당 지자체가 살처분 범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에 100억원, 작년 수해복구 분담금 153억원을 지출하는 바람에 작년 220억원에 이어 올해 17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야 하는 처지"라며 열악한 지방재정을 고려해 AI 살처분 비용을 국비와 도비에서 지원해줄 것도 요청했다.
pjk@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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