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이슈]이재성 이후 뚝 끊긴 K리거들의 유럽 진출, 기량 문제일까, 일시적 현상일까

2021-01-12 05:51:52

축구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의 스페셜매치 2차전이 12일 오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렸다. 국가대표팀 이동준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고양=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0.10.12/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지난 2018년 7월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 이재성(당시 전북 현대)이 독일 2부 홀슈타인 킬로 이적한 뒤 K리거의 다이렉트 유럽행 소식은 2년 반 넘게 들려오지 않고 있다.



K리그를 대표하는 수많은 스타 선수들이 '꿈의 대륙' 유럽 문을 두드렸을 뿐, 활짝 연 이가 아직 없다.

과거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구자철 지동원 윤석영 김두현 조원희 이동국 권창훈 등 K리그 최정상급 선수들은 어김없이 유럽에 도전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선수가 있지만, 일단 유럽에 발을 들여놓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행 비행기에도 오르지 못하는 현실에 놓였다. 왜일까.

'특징이 있는 선수'의 부재를 언급하는 관계자들이 많다. 프로 데뷔시즌부터 특출난 퍼포먼스를 펼쳐 유럽 구단의 관심을 끈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지동원 이재성 등과 같은 케이스가 없다는 것이다.

국내선수를 유럽으로 보낸 경험을 지닌 에이전트 A씨는 "단순히 말해서 당장 유럽에 갈 정도의 기량을 지닌 선수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K리그 구단 관계자 B씨도 "박주영 때와는 세대가 바뀌었다"며 "유럽에 나가려면 기술이 압도적으로 뛰어나거나, 압도적으로 빠르거나 하는 '특징'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K리그에 뛰는 선수 중 이런 '특징'이 뚜렷한 선수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 실력이 줄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라고 했다.

또 다른 에이전트 C씨는 "유럽 구단 관계자와 만나보면 '스피드'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기술이 좋은 선수, 체격이 좋은 선수는 많은데, 스피드가 빠른 선수가 부족하다면서 '한국에 발 빠른 선수가 있느냐'고 문의한다. 그런 유형의 선수가 아니고서야 당장 유럽 진출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구단 고위관계자 D씨는 선수 발전 시스템에서 원인을 찾았다. 기성용 지동원을 예로 들었다. 둘은 각각 서울, 전남 유스에서 성장해 프로 초창기부터 주전급으로 활약했다. 잠재력과 실전 경험이 합쳐져 유럽 레벨의 선수를 급성장했다.

B씨는 "예전과 달리 지금은 모든 팀이 자체 유스를 운영한다. 자연스레 명문구단 유스팀에 'A급' 자원들이 모인다. 이 'A급' 선수들은 정작 뛰어야 할 시기에 경쟁을 뚫지 못해 프로 경기에 뛰지 못한 채 도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고등학교 팀들의 성적지상주의, 대학진학을 우선하는 풍토도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소위 '특징이 있는 선수'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유럽 진출을 위해선 넘어야 할 장벽이 남아있다. B씨는 "과하게 표현하면 국내 구단들은 선수를 유럽으로 보내 팔자를 고치려고 한다. 가까운 일본은 임대 혹은 5~7억 정도의 저렴한 이적료를 책정해 선수의 유럽 진출을 적극 지원한다. 우린 툭하면 20~30억원이다. 선수의 장래, 구단 이미지, 한국 축구의 발전 등보다 '가격표'에 더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일화다. 국내 모 구단의 젊은 미드필더는 유럽 구단의 관심선상에 올랐다. 갑작스레 찾아온 기회. 선수는 구단 수뇌부를 찾아가 유럽행 의지를 전달했다. 돌아온 대답은 '노'. 유럽 구단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적료를 부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J리그 출신들은 빅리그뿐 아니라 유럽 무대를 경험할 수 있는 중소리그에 대거 진출해있다. 지난시즌 도중에도 수많은 선수들이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으로 진출했다. 일본 대표팀은 지난해 11월 유럽 원정 평가전을 순수 유럽파로만 치렀다.

B씨는 "어려워진 구단 살림살이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어쩌다 한 번 튀어나온 선수를 비싼 값에 유럽 보내는 게 아니라 이런 케이스를 자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진출 러시가 뚝 끊긴 게 '일시적인 현상'이란 주장도 있다. C씨는 "개인적으론 코로나19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얘기를 들어보면, 유럽 내에서도 이적이 줄었다. 그런 마당에 다른 대륙의 시장까지 챙길 여유가 없을 것이다. 구단들은 내부 점검을 하느라 바쁘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코로나19로 인해 A매치, 올림픽과 같은 큰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유럽 구단들은 선수의 프로필을 확인할 때 당연히도 대표팀 경력을 살핀다. 작년에는 선수의 '국제 경쟁력'을 살필 기회가 딱히 없었다. 직접 보지 않은 상태에서 선수를 뽑기엔 아무래도 부담이 있을 것"이라며 "만약 코로나19가 터지지 않았다면 1~2건 정도는 이뤄졌을 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들이 유럽 레이더 망에 걸려있는 건 사실이다. 지난여름 국가대표 윙어 이동준(부산 아이파크)은 포르투갈 1부 비토리아 기마랑스의 오퍼를 받았다. 국가대표 플레이메이커 이동경(울산 현대)은 같은 포르투갈의 보아비스타 이적을 추진했다 불발됐다. 비슷한 연령대의 송민규(포항 스틸러스) 김대원(대구 FC)도 최근 유럽팀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드리면 결국 열릴까. C씨는 "여름을 지켜보자. 유럽은 여름 이적시장이 아무래도 더 활발하다. 국가대표에서 뛰는 젊은 선수들이 다가오는 시즌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코로나19가 잠잠해진다면 제2의 이재성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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