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초점] '사냥의 시간'→'승리호'…극장 떠나는 韓영화, 탈출구는 넷플릭스뿐?

2020-10-18 13:27:59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약 9개월째 장기화 되고 있는 가운데, 극장가 역시 좀처럼 회복세를 찾지 못하며 진퇴양난에 빠졌다. 퇴보와 발전, 그 기로에 선 한국 영화다.



한국 영화는 1999년 개봉한 최초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쉬리'(강제규 감독)를 시작으로 르네상스를 맞았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장르, 1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제작비, 탄탄한 연출과 시나리오가 뒷받침되면서 한국 영화 1000만 관객의 시대를 연 것. 2003년 개봉한 '실미도'(강우석 감독)를 시작으로 지난해 5월 개봉한 '기생충'(봉준호 감독)까지 총 19편의 한국 영화가 1000만 관객을 울고 웃겼다. 특히 '기생충'은 한국 영화 최초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각본상,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국제영화상·각본상 수상하며 한국 영화 100년 역사의 새로운 획을 그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 강국인 한국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극장가를 가득 채웠던 관객은 이제 옛말이 됐다. 극장엔 관객이 사라지고 덩달아 영화도 사라졌다. 관객들은 이제 세상과 거리를 두며 집안에서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는 게 익숙해졌다. 당연히 극장가는 고사 위기를 맞았고 늘

호황이었던 한국 영화는 20년 만에 불황을 겪으며 시름이 날로 더해지고 있는 상황. 결국 개봉 시기를 잡지 못하고 극장을 등지며 OTT(Over-The-Top, 인터넷을 통하여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플랫폼을 탈출구로 삼고 있다.

가장 먼저 개봉 포기를 선언한 작품은 추격 스릴러 영화 '사냥의 시간'(윤성현 감독, 싸이더스 제작)이었다. '사냥의 시간'은 2011년 영화 '파수꾼'을 통해 10대 청춘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 섬세한 연출력으로 제32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괴물 신예' 윤성현 감독이 9년 만에 선보인 신작으로 총제작비 117억원이 들어간 블록버스터다. 한국 영화 최초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초청, 이에 힘을 얻어 지난 2월 개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개봉을 연기,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또 투자 비용을 회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극장 개봉이 아닌 넷플릭스 공개로 발을 돌렸다. 대규모 제작비가 들어간 한국형 블록버스터로는 최초의 시도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냥의 시간'의 국내 투자·배급사인 리틀빅픽처스와 해외 배급 대행사인 콘텐츠판다의 이중 계약 잡음이 커져 결국 법정 싸움까지 번지기도 했지만 OTT 플랫폼의 활로를 개척한 작품으로 유의미한 의미를 남겼다.

'사냥의 시간'으로 물꼬가 터진 OTT 행은 이후 더욱 활발하게 진행됐다. 멀티플렉스 체인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국내 중·소 투자·배급사들이 코로나19로 개봉일을 잡지 못한 밀린 신작을 처리하기 위해 여러 OTT 플랫폼과 콘텐츠 공개를 고민 중인 상황이다.

그중 투자·배급사 NEW의 신작인 스릴러 영화 '콜'(이충현 감독, 용필름 제작)과 범죄 영화 '낙원의 밤'(박훈정 감독, 영화사 금월 제작)이 '사냥의 시간' 이후 국내 상업 영화로 두 번째 넷플릭스 행을 긴밀히 준비하고 있어 관심을 끌었다. '콜'의 경우 지난 2월 제작보고회를 진행하는 등 3월 개봉을 목표로 달렸지만 코로나19로 무기한 개봉을 연기, 7개월이 지나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결국 넷플릭스로 우회하기로 했다. '낙원의 밤' 또한 지난달 열린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돼 전 세계 최초 공개됐고 이후 개봉을 진행하려 했지만 관객수가 회복되지 않은 극장가 상황에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 공개를 추진 중이다. NEW는 자회사인 콘텐츠판다를 앞세워 '사냥의 시간'으로 넷플릭스와 남다른(?) 인연을 쌓은바, 이번 '콜'과 '낙원의 밤'까지 넷플릭스 힘을 빌려 언택트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그리고 최근 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조성희 감독, 영화사 비단길 제작) 마저 극장 개봉 대신 넷플릭스 공개를 준비하고 있어 국내 영화계 적지 않은 충격을 안기고 있다. '승리호'는 2092년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대량살상 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국내 투자·배급사인 메리크리스마스가 순제작비 240억원을 투입해 만든 한국 영화 최초 우주 SF 블록버스터다. 1년 중 가장 큰 시장이었던 여름 개봉을 준비했지만 포기, 이어 추석 연휴를 겨냥해 개봉하려 했지만 이 역시 포기하며 표류하던 끝에 넷플릭스 행을 결정했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메리크리스마스가 '승리호'의 제작비 회수를 더는 미룰 수 없었던 것.

이렇듯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변한 시대, 한국 영화 또한 극장 상황이 호전되길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게 현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도 모르는 지금, 이제 관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다.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탈출구를 찾아야 하고 그중 하나가 넷플릭스, OTT 플랫폼의 진출이다.

다만 스크린에 최적화된 영화들이 무턱대고 넷플릭스 진출해 실패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극장에 최적화된 미장센과 돌비 애트모스를 도입한 '사냥의 시간'은 결국 그 매력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 채 상당한 호불호를 만들었고 전 세계 공개에서 생긴 자막 논란도 국내 팬들에게 공분을 사기도 했다. '콜'과 '낙원의 밤', 특히 한국 최초의 우주 SF 영화인 '승리호'의 넷플릭스 공개를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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