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는 데 돈간다" 스포츠인권 중요하다면서 예산은 3년째 동결...책임은 애먼 '계약직 조사관'에게

2020-07-17 15:47:39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13일 오후 고 최숙현 선수 인권 침해 사건과 관련한 특별 감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를 방문해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해 봇물처럼 쏟아진 체육계 미투 사건 속에 정부,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는 머리를 싸맸다. 가는 곳마다 스포츠 인권의 중요성, 인권 교육 강화 및 시스템 혁신 등을 외쳤다. 꽃으로도 때려선 안되는 시대, 이를 깨물고, 커튼을 친 채 무자격 운동처방사의 폭력을 감내해야 했던 꽃다운 23세 철인3종 선수의 사망사건이 더 가슴 아픈 이유는 지난해 체육계 가는 곳마다 무한 리플레이했던 단어가 바로 이 '스포츠 인권'이었기 때문이다. 문체부 스포츠혁신위의 첫 권고도 '스포츠 성폭력 등 인권 침해 대응 시스템 혁신'이었고,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클린스포츠센터에서 신고 이후 6개월 이상 미결된 건수가 57건에 달한다는 지적도 나왔었다. 하지만 정부도, 체육회도, 국회도, 중요한 정책이라고 번지르르 말만 앞세웠을 뿐 결국 돈과 인력은 따르지 않았다.



마음 가는 데 돈 간다. 올해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의 스포츠인권 향상 지원 예산은 9억1400만 원, 지난해와 끝자리까지 동일했다. 그 전년도인 2018년도 똑같았다. 대한체육회 예산은 지난해 3200억 원에서 올해 3939억 원으로 늘었지만, '인권 지원' 예산은 동일했다. 이는 대한체육회 전체 예산의 0.23%에 불과한 금액이다. 지난 1월 9일 문체부 산하 체육계와 완전히 독립된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을 골자로 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예산 22억 9000만 원이 배정됐다. 8월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을 앞두고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가 계약직 상담사, 조사관 몇 명의 책임감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중 '사건'이 터졌다.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의 정규직은 센터장과 직원 3명뿐이다. 선수, 지도자와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이들은 대부분 계약직이다. 계약직 사원 1명과 운영직 상담사(계약직) 4명, 그리고 폭력, 성폭력 사건의 전문적 조사를 담당하는 전문 조사관 3명이 있다. 4월 8일 체육회 신고 후 고 최숙현 선수와 통화를 나눈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전직 경찰 출신의 전문 조사관이다. 지난해 빙상계 성폭력 의혹 사건 당시 체육회 직원이 피해자를 직접 조사하는 것이 인권, 전문성 차원에서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고, 체육회는 지난해 8월부터 '전문 조사관 제도'를 도입했다. 경찰 퇴직자 출신인 3명의 조사관이 클린스포츠센터 내 폭력 및 성폭력 사건 조사를 전담했다. 주5회, 하루 4시간 이상, 4주 이상 일하는 조건으로 월 200만 원 내외의 활동비를 받는 위촉 계약직 신분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선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는 사라질 부서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실무는 대부분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계약직들에 의해 이뤄졌다. 고 최숙현 사건 이후 전직 경찰관의 전문성으로 체육계에 도움이 되고자 했던 이들의 선한 의도는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해당 조사관은 "고 최숙현 선수의 변호사, 관할 경찰서와 통화 후 녹취록, 병원 기록 등 증거를 수집하면서 희망적인 부분을 발견했다. 고 최 선수에게 추가 증거 제출을 요청하며, 자주 연락하자고 했던 것이 마지막 통화가 됐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일부에선 '왜 변호사가 아닌 선수에게 직접 전화했느냐' '선수를 왜 압박했느냐'는 비난이 들끓었다. 이 조사관은 "피해자 입장을 대변하고 입증하기 위해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그것이 조사관의 자세인지" 반문했다.

고 최숙현이 마지막 순간 언급한 '그 사람들'은 도리질 치고 정작 책임져야 할 '어른'들은 누구도 나서지 않는데 애먼 '계약직 조사관'만 잡는 상황은 비겁하다. 스포츠 인권이 중요하다면서 문체부, 체육회 인권 예산은 왜 매년 똑같았는지, 인권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인권 전문가여야 할 클린스포츠센터장은 왜 그렇게 자주 바뀌며(6년새 8명), 조사관, 상담사는 왜 모두 계약직이었는지, 명실상부한 위상도 없었던 선의의 조력자들이 이 사건의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건지 온통 의문투성이다. 장애인체육쪽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지난해 '선수들의 사랑방'으로 새로이 출범한 대한장애인체육회 체육인지원센터는 올해 초 예산 문제로 따로 꾸민 사무실 방을 뺐다. 대한체육회와 마찬가지로 체육인지원센터장 역시 '인권 전문가'가 아닌 순환 보직이다. 인권은 전문 영역이다.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회 역시 '인권 감수성' 측면에서 허술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지난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질의응답 시간, 피해자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같은 공간, 같은 열에 공존했다. 고 최숙현 사건을 세상에 알린 이 용 의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의원들이 가해자로 지목된 장 모, 김 모 선수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용기를 내 피해를 폭로한 고 최숙현의 동료들이 김 모 감독과 '그 선배들' 앞을 지나야 했다. 초고속 성장, 제한된 기회, 뜨거운 교육열 속에 오로지 1등만이 살아남는 각박한 세상을 살아온 대부분의 이들이 진보, 보수, 남녀, 노소를 떠나 인권, 성인지 감수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 가슴 아픈 사건의 원인을 가해자, 책임자가 아닌 현장의 가장 약한 고리로 몰아가는 것은 비겁하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에서.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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