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굴곡진 성곽의 겨울 풍경…남한산성

기사입력 2025-02-12 08:16

눈 내린 남한산성 [사진/임헌정 기자]
남한산성 행궁 안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임헌정 기자]
행궁 전경 [사진/임헌정 기자]
행궁 외행전 [사진/임헌정 기자]
응청문을 통해 본 내행전(왼쪽)과 재덕당 [사진/임헌정 기자]
금림조합비 [사진/임헌정 기자]
늠름한 수어장대 [사진/임헌정 기자]
연주봉 옹성으로 가는 길 [사진/임헌정 기자]
연주봉 옹성 출입문인 제5 암문 [사진/임헌정 기자]
우익문 인근에서 본 서울 도심 야경 [사진/임헌정 기자]
세계유산에서 하는 역사기행

(경기광주=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곧 다가올 봄과 초목이 우거지는 여름,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에 방문해도 좋지만 추운 계절이면 생각나는 문화유산이 있다.

겨울 풍경을 감상하며 역사 기행을 할 수 있는 곳, 남한산성을 다녀왔다.

◇ 대중교통으로 찾아간 세계유산

수도권 일부 지역에 한파특보가 내려진 겨울날 길을 떠났다.

낮에도 영하의 기온을 유지할 것이라는 예보에 옷을 단단히 챙겨입었다.

남한산성은 서울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는 곳이라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서울 지하철 8호선 산성역까지 간 뒤 인근 정류장으로 이동해 9번 버스에 올랐다.

평일 오전 시간대인데도 승객들이 적지 않았다.

며칠 전 눈이 내려 길이 험할 것 같았지만, 인근 오르막 도로는 잘 정비돼 있었다.

버스는 승객을 태웠다 내렸다 하면서 30여분 뒤 남한산성에 도착했다.

◇ 행궁에서 시작한 역사기행

버스에서 내리자 상쾌한 공기가 느껴졌고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길 건너편 산의 소나무에는 눈이 얹혀 있었다.

햇살 가득한 경쾌하고도 청명한 날씨였다.

한 바퀴 훑어보니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였다.

바로 옆의 행궁부터 찾았다. 행궁은 왕이 도성 밖으로 나갈 때 임시로 거처하던 곳이다.

취재팀이 방문한 날 행궁에도 눈이 쌓였지만, 길이 잘 닦여있어 관람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남한산성은 해발 480m 이상의 산세를 따라 축성돼 둘레가 약 12㎞에 이른다.

통일신라시대 쌓은 주장성의 성돌을 기초로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인조 4년(1626년) 중추가 되는 본성이 완성됐고 병자호란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조금씩 증축됐다.

이 때문에 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시대별 성곽 축성술이 잘 나타나 있다. 2014년에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곳은 1636년 12월 병자호란 때 인조가 피난했던 곳으로 각인돼 있다.

인조는 이후 47일간 버텼지만,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이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하며 항복을 표시했다.

1637년 1월 30일 엄동설한에 있었던 일이라 지금 날씨와 무척 비슷할 것 같았다.

취재팀과 동행한 경기도 광주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세계유산 표지석을 지나 행궁의 정문인 한남루로 걸어가는 짧은 동안에도 이곳에 얽힌 역사를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취재팀은 행궁 안에 들어가 건축물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펴봤다.

남한산성을 다룬 소설과 영화에서 척화파와 주화파가 논쟁을 벌이던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후대인 숙종 때 건립된 좌전과 이를 둘러싼 키 큰 소나무들에선 수직선이 두드러져 보였다.

이 때문인지 엄숙한 느낌이 들었다. 좌전은 유사시 종묘의 신주를 옮겨 봉안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 금림조합비와 수어장대

행궁을 나와 인근 오르막길로 들어섰다. 2개의 비가 보이고 '금림(禁林)조합비'라고 적힌 안내판이 서 있다.

"1927년 일제강점기 산성리 마을에는 산성 내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금림조합을 결성해 40여명의 조합원이 교대로 보초를 서면서 1945년까지 소나무 벌채를 감시하고 소나무를 보호했다"고 적혀있다.

이들 덕분에 지금의 소나무 숲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대목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조합장 2명의 덕을 기리기 위한 비석으로, 1934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안내판은 설명했다.

금림조합비를 지나 오르막길을 900m 정도 지나자 사람들이 점점 눈에 띄기 시작했다. 수어장대로 향하는 사람들이다.

이곳은 군사적 목적에서 지휘와 관측을 하는 누각인데, 건축물이 제법 화려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는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등산 장비를 갖추고 이곳을 찾아온 10여명의 여성이 그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다음으로는 회사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시무식'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서로들 "빨리 찍자"며 포즈를 취했다.

인근에는 '청량당'이 있다. 남한산성 동남쪽 축성 책임자로, 경비를 탕진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은 이회 장군 등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이다.

◇ 굴곡진 성곽…이어지는 삶의 길로 보여

수어장대를 나와서는 줄곧 풍경을 바라보며 걸었다.

아이젠을 갖춘 채 조심조심 눈길을 걸었지만, 겨울 햇살만큼은 따스했다.

담 위에 쌓인 눈이 흰색의 윤곽을 이루고 있었다.

이윽고 조그마한 성문이 보였다.

남한산성에 있는 동서남북 4개의 성문 중 가장 작은 서문이다.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항복하기 위해 나갔던 문이다.

서문을 지나 옆길로 올라가자 일순 바람 소리가 '쏴' 하고 일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성곽 너머에는 고층건물이 늘어선 서울과 경기 인근 도시의 모습이 드넓게 펼쳐졌다.

이제 연주봉 옹성으로 향했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것이다.

옹성을 본 뒤에는 본성의 성벽 쪽으로 다시 돌아섰다.

날씨가 좋은 덕분에 하늘이 순간 찬란해 보이기까지 했다.

시선을 내려보니 암문 옆으로 돌담이 둘러쳐져 있고 그 앞에 소나무가 넓은 가지를 양옆으로 펼치고 있는 풍경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다음으로 북문까지 걸었다. 이쪽 길에선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한두명씩 오가는 정도라 소란스럽지 않았다.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 멈췄던 바람이 이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제법 유연하게 이어진 성곽이 시야에 들어와 안정감을 줬다.

굴곡져 있는 성곽이 때로는 연결된 길처럼, 끊이지 않는 여러 삶의 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승문이라고도 불리는 북문이 보였다.

◇ 구불구불 도로를 지나 다시 산성 밖으로

성곽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건축물을 살피고 안내판을 일일이 읽어나가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났다. 그사이에 바람이 강해졌다.

취재팀은 오전에 도착했던 지점으로 돌아왔다.

남한산성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하루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내려왔다.

산성 도시였던 이곳의 여러 문화유산과 역사에 얽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버스 좌석은 모두 차 서있는 승객들도 몇몇 있었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jsk@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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