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문화재단(이사장 윤성태)과 한국출판학회(회장 노병성)가 공동으로 주최한 학술대회 '한국잡지 120년, 시대정신을 말하다'가 28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한국출판학회는 공모를 통해 발제자를 선정하고, 창간호의 다양한 학술적 가치를 찾아내는 과정을 진행했다. 세 차례에 걸친 토론과 간담회를 통해 발제의 완성도를 높였고, 연구자들 간 활발한 교류를 바탕으로 수준 높은 학술대회를 선보였다.
학술대회는 노병성 회장의 '잡지창간호의 가치와 의미'란 기조 발제로 시작했다. 노 회장은 잡지창간호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창간 당시의 인간 감정구조를 포함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창간호를 단지 유물로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디지털과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통해 창간호의 '현재화'가 중요함을 역설했다.
2부에서는 부길만 동원대학교 명예교수는 '잡지로 보는 일제감정기-잡지 창간호를 중심으로'라는 발제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왕조사관이나 경제사관과는 전혀 다른 출판문화사관으로 역사를 해석했다. 윤세민 경인여자대학교 교수는 "우리나라 최장수 잡지인 '경향잡지'는 곧 한국잡지의 역사이며 한국천주교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앙의 백년지기', '민족의 백년지기'로서 목소리를 울려 왔던 '경향잡지'는 1937년부터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 민족을 배신하고 신사참배와 우리말 억압 정책에 앞장서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였음을 밝혀 냈다.
서일대학교 김진두 교수는 '1930년대 잡지 '삼천리' 여성관 연구'를 발제했다. '삼천리' 창간호를 통해 나타난 잡지 편집방침은 '훨씬 값싼 잡지를 만들자', '누구든지 볼 수 있고, 버릴 기사가 없는 잡지를 만들자', '민중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잡지를 만들자'라는 것이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삼천리'에 나타난 여성관은 사회주의적 페미니즘, 나혜석 류의 급진적 성담론, 군국주의 파시즘에 입각한 여성론 그리고 자유주의적 여성론 등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김 교수는 사회주의적 페미니즘은 여성의 문제를 체제와 계급적 문제로 파악했음을 밝히고 있다. 차별받는 사람은 유산 계급의 착취에서 생길 뿐 아니라, 남성이란 또 다른 계급에 의해 이중적으로 속박받는 존재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김교수에 의하면, 사회주의 여성들의 여성 인권에 대한 기여는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했던 여성 인권 향상 대책은 거의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교육학 전공의 김희주씨는 1940년대부터 1990년까지의 교육잡지 창간호 22종을 살펴 연도별로 교육 가치관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창간사 및 목차를 통해 당대 교육의 가치, 정신, 사상 등을 고찰했다. 해방 이후 창간호에 나타난 가치관은 '교육의 재건' 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무너진 우리 교육의 시스템을 건설하는 것이 당면과제 였으므로 교육의 기초를 세우기 위한 문맹퇴치사업, 학제연구, 초등교육확대 등의 담론이 주를 이루었음을 밝히고 있다. 김 씨는 '60년대와 '70년대 창간호와 교육잡지에 나타난 시대 정신은 '교육의 대중화'가 핵심적인 가치였음을 주장했다. 아울러 당시 창간된 교육잡지 예컨대 1964년 창간한 '교육춘추'와 1968년에 창간한 '현대교육'은 교사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장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또한 이들 창간사에는 교육자의 사명, 바람직한 교육관, 새교육 이념 등에 관한 주장이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교육의 연구 성과나 의견을 대중에게 알리자라는 주장 등이 등장함을 밝히고 있다. 김 씨는 '80년대에는 '교육의 전문화'가 주된 가치였으며, '참교육'의 탄생으로 대변되는 90년대에는 '교육의 다양화'가 부상하는 가치였다음을 밝혀냈다.
이날 행사에는 가천박물관의 희귀 잡지 창간호와 도서가 전시되기도 했다. 가천박물관이 학술대회를 기념해 준비한 '가천박물관 소장 창간호 귀중본(貴重本), '시대를 읽는 창, 창간호'' 특별전이다. 국내 최다 창간호 소장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가천박물관이 소장 창간호 2만 657점 중 문학적, 출판 역사적으로 가장 의미가 큰 17점을 전시했다. 가천박물관은 이번 전시에 주요 창간호 364점을 정리한 창간호 도록도 함께 비치해 전시한 17점 이외의 창간호에 대해서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학술세미나에서 문화 유산을 전시하는 일은 거의 없는 일이어서 이채로웠고, 참석자들은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평이다.
이에 대해 가천문화재단 윤성태 이사장은 "국내 최다 창간호 소장처인 가천박물관과 출판분야 최고 학술단체인 한국출판학회가 만나 우리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첫발을 내 딛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아울러 한국출판학회 노병성 회장은 이번 학술대회는 '살아있는 박물관과 학회의 아름다운 동행'이었다고 자평하면서,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행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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