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펀드인 KCGI(일명 강성부펀드)의 공격과 조양호 전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경영권이 흔들리고 있는 한진그룹이 최근 조원태 회장을 중심으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가운데 조 회장의 여동생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한진칼 전무로 그룹에 복귀하면서 한진가 3남매의 분리 경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만 아예 그룹을 분할하는 계열분리보다는 SK그룹처럼 오너들이 계열사를 나눠맡아 독립 경영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현민 전무 복귀는 적전분열 회피?
이처럼 KCGI는 지분 확대와 함께 한진그룹 경영 투명성을 계속해서 감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KCGI의 한진칼 지분율은 최근 15.98%까지 높아졌다. 금융투자업계는 KCGI가 내년 3월 열리는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 전까지 지분율을 20%대로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내년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등기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조 회장의 연임 안건이 이변이 없는 한 상정될 것이어서 양측이 치열한 표 대결을 벌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0일 조현민 전 전무가 한진칼 전무 겸 정석기업 부사장으로 경영에 복귀하며 파문이 일었다. '물컵 갑질'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퇴진한 지 불과 14개월 만이다. 게다가 조 전무가 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과 그룹의 부동산과 건물을 관리하는 정석기업 등 핵심 계열사로 돌아옴에 따라 전보다도 그 위세가 더 강해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대해 관련업계는 조원태 회장이 KCGI와의 내년 한진칼 주총 표 대결에 앞서 '집토끼 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앞서 조 회장의 그룹 총수 취임과 관련해 다른 일가족들이 반대한데다 공정거래위원회 동일인(총수) 지정에도 이의를 제기하는 등 조 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상당한 잡음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조 회장 일가 지분이 28.95%인 만큼 다른 주주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냐에 따라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이 무산될 수 있다. 조현아 전 사장과 조현민 전무 두 누이를 품에 앉아야만 연임을 안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이 적전분열(敵前分裂)을 피하고 집안단속에 나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갑질 논란으로 조현민 전무 등 두 누이가 당분간 경영 복귀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KCGI가 파상공격을 해오자 조 회장이 두 누이와 서둘러 타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도 "KCGI의 공세를 막기 위해 3남매가 일단 연합전선 구축에 합의한 것 같다"며 "조현민 전무의 복귀가 그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조현아 전 사장의 복귀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대한항공 국적기를 이용해 해외에서 명품가방 등을 밀수한 혐의로 기소됐던 조현아 전 사장도 지난 13일 법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경영 복귀의 장애물 중 하나가 사라졌다. 한진그룹 계열사는 임원 자격에 위법 행위를 문제 삼는 규정이 없어 전과가 있더라도 구속 상태만 아니면 임원직 수행이 가능하다. 필리핀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혐의와 관련한 법원 선고가 남았지만, 당초 검찰이 벌금형을 구형한 만큼 구속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복귀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현민 전무의 경영 복귀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힌 한진그룹은 조현아 전 사장의 복귀여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한지붕 세가족'으로 남매간 경영권 가닥?
조현민 전무에 이어 조현아 전 사장까지 복귀가 유력해지면서 한진가 3남매가 경영권을 어떻게 정리했는지를 놓고 재계 등에서 설왕설래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한진 오너 일가들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잡음이 일면서 조원태 회장의 리더십에 상처만 났다. 이는 조 회장 뿐만 아니라 다른 오너 일가에게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어 빠른 정리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그동안 한진그룹내 계열사들을 나눠 오너 3남매가 독립 경영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는데 이렇게 결론이 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앞서의 항공업계 관계자도 "한진그룹 직원들이 오너 일가간 분란에 대해 불안해했다"며 "어차피 공정위 동일인으로 조원태 회장이 지정됐으니까 이 체제로 빨리 안정을 찾았으면 하는 생각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런 기류를 한진 3남매가 파악을 하고 경영권과 관련한 합의를 도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일단 한진가 3남매가 고 조양호 회장 등 선대처럼 계열분리로 갈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진그룹은 조중훈 창업주가 타계하면서 장남인 고 조양호 전 회장이 대한항공과 한진을,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은 한진중공업을, 3남 고 조수호 전 회장은 한진해운을, 4남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한진투자증권(현 메리츠금융)을 각각 물려받았으며 계열분리를 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그 때와 많이 다르다. 재계 관계자는 "한진칼이라는 지주회사가 대한항공, 한진, 진에어, 칼호텔네트워크, 정석기업 등을 거느리고 있어 계열분리가 용이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SK그룹의 '따로 또 같이' 방식처럼 오너들이 게열사를 나눠 독자 경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SK그룹은 고 최종현 회장의 장남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룹 총수와 함께 주력사인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을 관할하고 있고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 E&S 부회장, 그리고 최 회장의 사촌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SK가스 부회장 등도 SK그룹의 다른 계열사를 나눠맡아 독립적으로 경영하고 있다.
재계는 이같은 방식으로 한진그룹 경영권 승계가 재편된다면 조원태 회장은 한진그룹 총수와 함께 주력사인 대한항공과 한진을, 조현아 전 사장은 칼호텔네트워크 등을. 조현민 전무는 진에어 등을 독자적으로 경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지붕 세가족'이 되는 셈이다. 조완제 기자 jwj@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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