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후반의 주부 김모씨는 1개월전부터 시도때도 없이 가슴이 뛰거나 소화가 안돼 일상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화병(火病)은 울화병(鬱火病)의 줄임말로, 화(火)가 쌓여서(鬱) 생긴 병(病)이라는 뜻이다.
남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까지 화병으로 인한 두통, 소화불량, 수면부족, 의욕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화병은 무엇이고 증세와 예방, 치료법 등을 이대목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원정 교수의 도움으로 정리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잠 뒤척이고 모든 일에 짜증'…명절 이후 이혼 신청 평상시의 2배
최근 온라인 카페나 사이트를 보면 주부, 직장인 등 많은 네티즌들이 설 명절에 대한 걱정과 우려 등의 글을 올리고 있다.
'명절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벌써부터 소화가 안된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짜증난다' 등의 내용이 주로 게시글에 담겼다.
이를 두고 의료계는 '명절 화병'의 증상으로 보고 있다.
성별, 연령별 구분없이 나타나는 화병은 주로 스트레스가 주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최근 성인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3.9%가 '설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대부분의 응답자는 비용 지출, 처가·시댁 식구들과 불편, 제사 음식 준비, 어른들의 잔소리 등을 꼽았다.
이로인해 즐거워야 할 귀성길이 언제부터인가 '불편한' 길이 돼 버린 상황이다. 또한 화병이 터져나오면서 급기야 이혼 위기까지 몰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제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6년 접수된 이혼 신청은 10만 8880건으로 하루 평균 298건이었지만 설날과 추석 이후 열흘간은 하루 평균 약 577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즉, 명절 이후 이혼 신청은 평상시의 2배에 달하는 셈이다.
특히 지난 2016년의 경우 설 연휴가 끝난 직후인 2월11일은 838건, 추석 연휴 직후인 9월19일은 1076건으로 평소의 3~4배에 달하는 이혼 신청이 몰린 것으로 전해진다.
우울증 뿐만 아니라 심장질환·위식도역류 등 동반
화병은 문화 관련 증후군의 하나로, 미국정신의학협회 DSM-IV(정신 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4판)에 한국식 명칭 그대로 'Hwa-byung'으로 표기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에만 화병이 존재할까?
이에대해 임 교수는 "화병의 원인을 강한 아들 우대, 가난했던 과거, 시집살이의 풍토 등 한국의 특유한 문화구조로 볼 수 있다"며 "특히 육아 및 자녀교육은 모두 주부가 책임져야 하고, 자식이 잘못될 경우 모두 뒤집어쓴다는 피해의식이 만연한 사회분위기와도 관련이 깊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엔 변화하는 사회 구조에서 취업 준비에만 몇 년씩 걸리거나 어렵게 들어가도 40대에 조기퇴직을 하게 되는 남성들, 자녀 양육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지치는 워킹맘에게도 화병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화병은 주로 수년간 감정표현을 못 하고 지내던 상태에서 나이가 들고 심신이 약해져 가면서 발병한다.
더 이상 참기 어려운 분노 폭발로 오랫동안 '감정표현 불능(Alexithymia)' 상태에 따른 '가면성 우울증(Masked Depression)'의 한 형태인 것.
화병에 잘 걸리는 성격은 고지식하고 양심적이며 항상 감정을 억제하고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성정의 사람들이다. 직장 스트레스가 많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남성에게도 자주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마음의 병은 신체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 화병이 지속되면서 실제적으로 심장질환이나 위식도역류 등이 동반돼 증상이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화병의 주요 증상은 얼굴 화끈거림이나 등의 열기, 입마름, 가슴의 두근거림과 답답함 등이 있다. 목과 가슴에 덩어리가 느껴지거나 소화가 잘 안 되고 두통과 어지럼증, 손발 저림이 동반되기도 한다. 아울러 불면증과 고혈압, 중풍, 당뇨병, 비만, 관절염 등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과민성 대장염, 만성 위염, 위궤양, 두통, 귀 울림 등의 신경성 질환과도 밀접하다.
무조건 '내 탓이오'는 안돼…운동과 취미 활동이 도움
화병의 치료는 약물 요법과 정신 치료로 나눠 시행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억눌려 온 억울함, 분노, 화 등을 공통으로 드러낸다.
이에따라 자신이 얼마나 오랜 세월 힘들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것.
또한 소량의 우울증 치료제나 항불안제제 등의 약물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환자에게 '정신과 처방 약물들은 부작용이 거의 없고 만성 스트레스에 의한 증상과 신경호르몬의 이상을 조절한다'고 충분히 설명한 후 처방하는 것이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주로 처방하는 약물은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계통의 약물로, 주요 우울증 치료에 쓰는 용량보다는 적은 용량이 쓰인다. 항불안제제는 항우울제가 충분히 효과를 나타내는 시점인 2∼4주 이전에 보조 역할로 잠깐 사용하는 것이 좋은데, 주로 벤조디아제핀 계통이나 부스피론을 처방한다.
화병을 예방하는 방법으로는 즐거운 운동과 취미 생활이 큰 도움이 된다. 인간관계에서는 무조건 '내 탓이오'라는 순종형이 되어서도 안되고, 남들에게 바뀌도록 지시만 해서도 곤란하다. 또한 완벽하려고 애쓰거나 항상 매사를 절대 선 아니면 절대 악으로 구분하는 흑백논리만 주장해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임 교수는 "모든 관계에서 나도 편하고 남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점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분노 반응이 생길 때 그 분노를 참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평소에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서 스스로 잘 깨닫고 적절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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