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환자의 고통을 배제하고 생명유지를 위한 조치를 계속할 것인지 말건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이규복 기자 kblee341@sportschosun.com
|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켜 살릴 수는 없어도 여러 의료행위를 통해 임종을 늦추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인공호흡기를 적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연명의료가 아니라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임종 과정만을 연장할 때 그 행위를 연명의료라고 한다.
- '연명의료결정법'이란 무엇인가?
시행된 법 2조에 따르면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의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고 돼 있다. 법률상 연명의료 종류를 4가지로 한정 지었기 때문에 '승압제(혈압을 높이는 약제)'나 '에크모(혈액을 몸 밖으로 빼내 산소화 시킨 후 다시 체내로 넣어주는 장치)' 등의 연명의료는 이 법에 적용받지 않는다. 이 부분은 지금 국회에서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
이전까지는 진료 현장에서 연명의료를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모두가 환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치료라 동의하고 적법한 절차만 갖추면 연명의료를 합법적으로 중단할 수 있게 됐다. 또, 연명의료 결정이 주로 보호자였던 것에서 좀 더 환자 본인 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반면, 현장에서는 갑작스럽게 복잡한 서류작업이 생겼고 여러 절차가 요구되면서 사실 이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염려된다. 오히려 좀 더 불필요한 연명의료가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 생명을 유지시키고 더 오래 사는 조치를 받을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이유는?
의학이 발달하면서 생명연장 기술도 좋아졌다. 이제는 '어디까지 치료해야 하나'라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다. 하지만, 연명의료는 사람의 심폐기능이 유지되도록 하는 기술이지 이전 삶으로 회복이 가능할지는 질환의 회복 가능성이나 전신상태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서 좌우된다.
특히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연명의료를 시행할 경우에는 중환자실에서 사랑하는 사람들도 자주 만나지 못하고 온갖 기계에 둘러 싸여 고통스럽게 임종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맞고 싶은 죽음인지 환자와 의사가 신중하게 검토하고 결정하자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 연명의료결정법이다.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에서 발간한 '생애말기전략' 보고서에서는 '좋은 죽음이란 통증 등 괴로운 증상이 없고 친숙한 환경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한 사람으로 존중 받으며 임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연명의료를 하는 동안은 이런 '좋은 죽음'의 환경이 매우 어렵다.
중환자실에서 연명의료를 받는 환자와 가족을 만나 보면 '이런 줄 알았으면 안 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연명의료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중환자실에서의 임종은 '좋은 죽음' 존엄사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
말기 환자는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돼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수개월 이내 사망할 것으로 예상을 받은 환자라고 법은 명시하고 있다. 법에서는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등 4개 질환에 대해 담당 의사 2인으로부터 말기로 진단을 받은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한다. 4개 질환이 아닐 경우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라고 진단을 받았을 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 가능하다.
- '연명의료계획서'라는 것은 무엇인가?
연명의료계획서란 말기 환자 혹은 임종과정 환자의 의사에 따라서 담당의사가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 등의 결정과 호스피스에 관한 사항을 계획해 문서로 작성한 것이다. 이미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다고 판단되면 특별히 추가적인 확인절차 없이 바로 연명의료 중단 등을 결정할 수 있는 문서다.
|
가족들과 의료진이 임종과정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시점에서는 환자의 의식이 혼미한 경우가 많다. 본인이 직접 의사 표현을 하기는 이미 늦은 상황이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은 환자, 가족뿐만 아니라 의료인도 말을 꺼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무엇인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미래에 자신이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를 대비해 미리 어떤 치료를 원하는지 밝힌 문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만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국가 등록기관에서 작성할 수 있다. 작성 시기에 제한이 없어 건강할 때 작성할 수 있다. 작성 문서는 국가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에서 관리한다. 작성자의 임종기 때 연명의료 결정이 필요하면 모든 의료기관에는 국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문서를 찾아 작성자 뜻을 존중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건강할 때는 물론 치료 중 등 언제라도 작성할 수 있지만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 혹은 임종과정 시기에 작성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은 꼭 의료기관일 필요가 없다. 민간기관이나 중증질환자가 많이 방문하는 병원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신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의향서와 계획서 모두 회생 불가능한 임종과정에만 효력이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 2가지 모두 작성자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으며, 요청이 있을 경우에 의사나 등록기관은 관리기관 정보처리시스템 데이터베이스가 변경 또는 철회 여부가 반영되도록 조치해야 한다.
- 평소 '연명의료, 나는 그런 거 절대 안 할 거야'라는 얘기를 했어도 서식이 없다면 연명의료를 받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는 법적으로 2가지 문서 외에도 환자가 가족에게 말하거나 일기, 유언장, 녹취, 동영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때 환자 가족 중 두 명 이상이 평소 환자가 연명의료에 관해 충분한 기간 동안 일관된 의사표시를 했다고 진술을 하고 담당의사와 해당 전문의가 확인하면 환자 의사로 존중이 될 수 있다.
조금 어렵다 하더라도 환자가 힘든 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면 가족끼리 그런 얘기들을 나눠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
연명의료 결정의 마지막 방법은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다.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이고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거나 추정할 수도 없는 경우 시행된다. 가족 전원 합의의 의사표시 후 담당의사와 해당분야 전문의 1인이 확인하면 가능하다.
여기서 가족 전원에는 배우자, 직계 존속, 직계 비속 모두를 말한다. 전원이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모일 필요는 없다고 언급됐기 때문에 해외거주 가족은 녹음과 녹취 등의 확인도 인정된다.
- 이 법 취지를 잘 살리기 위해 실제로 어떤 변화들이 필요할까?
환자 가족, 일반인 사이에서 이 문제를 솔직하게 얘기하고 나눌 수 있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아직까지는 환자를 앞에 두고 그런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진료현장 역시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특히 말기에 대한 고지는 대부분 외래진료실에서 이뤄지는데 3분 진료로는 불가능하다. 말기에 대한 고지 없이 바로 임종기를 얘기하는 것도 상당한 윤리적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의료진의 임종기 진단 이견과 정확한 시점 예측의 어려움이 있다. 좀 더 많은 의료진 교육과 관심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