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일명 '최순실 게이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씨가 지난달 31일 검찰에 출석함에 따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낸 기업으로 수사의 불똥이 튈 수있다는 우려에서다. 최순실씨가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에서 기부한 돈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800억원 가량이다. 대부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모금됐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M&A는 정치권과 학계에서 1년 념게 찬반논쟁을 벌였던 사안이다. 업계는 찬반논쟁들을 종합해 볼 때 양사의 M&A가 조건부 인수 쪽으로 가닥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양사의 M&A를 불허했다. 재계는 SK텔레콤의 M&A 불발이 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또 있다. 최순실씨가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낸 기업 4곳 중 1곳은 대규모 적자 등으로 경영악화를 겪고 있었다는 점이다. 재벌닷컴과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기업은 모두 53개사로 집계됐으며,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3개사가 10억원 이상의 출연금을 냈다.
특히 롯데그룹은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을 통해 미르에 28억원, 롯데면세점을 통해 K스포츠에 17억원 등 총 45억원을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K스포츠 측이 직접 추가 출연을 요청해 5월 초 그룹 차원에서 70억원을 더 지원했지만 수 일 후 돌려받았다. 해당 시점은 검찰이 가족간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롯데그룹에 대해 전방위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본격 수사에 착수하기 직전이다. 재단 측이 기업의 약점을 잡고 출연금 명목으로 돈을 받으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기부금을 낸 이들 53곳의 경영실적을 보면 지난해 적자로 법인세 비용도 없는 기업이 12개사로 전체의 22.6%를 차지했다.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해 별도기준 477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2년 연속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못한 상황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에 모두 10억원을 출연했다. 두산중공업도 지난해 4500억원대의 적자에도 미르·K스포츠재단에 4억원을 냈으며 대주주인 두산 역시 7억원의 출연금을 건넸다.
지난해 수 백억대의 적자를 기록한 CJ E&M과 GS건설도 각각 8억원과 7억8000만원을 내놨고, 2년째 적자를 낸 아시아나항공과 GS글로벌도 각각 3억원과 2억5000만원을 출연했다. 이밖에 금호타이어(4억원), LS니꼬동제련(2억4000만원), GS이앤알(2억3000만원) LG전자(1억8000만원), LS엠트론(6200만원) 등도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출연금을 내놨다.
한편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거액 출연으로 이들 대기업이 쓴 기부금 규모는 지난해 급증했다. 실제로 53곳 중 기부금 내역을 공개한 45개사의 감사보고서상 기부금 합계는 지난해 1조695억원으로 전년보다 1542억원(16.8%)이나 늘었다. 이들 53개사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이 774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기부금 순증가액의 절반가량이 이들 재단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일부 대기업은 감사보고서나 사업보고서상 기부금 지출내역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의 자금 출처와 회계처리에 대한 논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사 결과 감사보고서 등 공시자료에 기부금 내역이 없는 곳은 한화(15억원), GS건설(7억8000만원), CJ(5억원), LG전자(1억8000만원), LG이노텍(1억원), LS전선(1억원), LG하우시스(8000만원), LS니꼬동제련(2억3900만원) 등이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 기업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고액의 출연금을 낸 사안이 이사회 결의사항 등에 기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자금 집행 과정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대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사실상 '강요'에 의한 것인지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달 30일 소진세 롯데그룹 대외협력단장(사장)과 이석환 롯데그룹 대외협력단 CSR팀장(상무)을, 31일에는 SK그룹 대관 담당 박영춘 전무를 연이어 소환조사한 바 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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