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우조선해양이 감춰왔던 손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조선업계와 금융계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우조선해양은 2분기 재무제표에서 3조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건 어닝쇼크 수준이 아니라 쇼크 그 자체였다. 지난해까지 조선업계에서 유일한 흑자라고 자랑하던 대우조선해양이다. 그런데 갑자기 3조원이란 천문학적인 금액이 손실이라니 채권단은 물론 일반 투자자들까지 피해가 상당하다. 당장 대우조선해양을 관리하던 산업은행은 긴급자금 2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3조원 손실뿐만 아니라, 채권단과 투자자 등 피해자들은 속출하고 있는데, 정작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당연히 대우조선해양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2000년부터 지금까지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파견해왔던 산업은행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근래 몇 년 동안 조선업계는 상당히 어려운 시기였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조2495억원의 영업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했고, 삼성중공업은 2013년에 손실 일부를 장부에 기재했다. 그동안 대우조선해양은 손실을 미뤄오다가 이제야 숨겨왔던 손실을 공개했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은 손실 금액도 문제지만, 손실 반영을 계속 미룬 것이 회계부정 때문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 일고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주에 대우조선으로부터 손실을 보고받았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을 10여년 넘게 꼼꼼하게 챙겨오던 산업은행이다. 매년 인사철에 대우조선해양의 상무와 전무를 비롯한 임원수를 일일이 지시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대우조선해양과 경영성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1년 매출과 영업이익, 절감목표 등을 체크하고 점수화해 보고서를 받아왔다. 심지어 대우조선해양의 CFO 자리엔 산업은행 부행장 출신들을 파견해 회사 재무를 계속 관리했다. 그런데 조 단위의 손실을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지금까지 몰랐다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만약 산업은행의 주장대로 대우조선해양의 재무 상태를 전혀 몰랐다면 엄청난 직무유기를 10여년 넘게 해왔던 셈이다.
제대로 관리 안하고, 혈세만 투입하는 땜질 처방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4711억원의 흑자를 냈다고 발표했다. 올해 3월말 까지만 해도 주가는 2만원선을 기록했다. 그런데 23일 기준 8020원으로 주가가 반 토막도 더 난 상태다. 이미 대우조선해양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은 상태다.
그런데 이 사태를 두고 대우조선해양이나 산업은행 모두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실사를 통해 고재호 전 사장 등 전직 경영진이 이번 손실을 유발한 정황이 있다면 민·형사 고발을 포함해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요 책임자이자 최대주주인 산업은행 자신은 정작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단순히 세금을 투입하는 등의 지원안만 내놓을 뿐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몰랐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또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사실상 정치권에서 최고경경자(CEO)나 임원 인사를 하기 때문에 정작 산업은행의 역할이 크지 않았다는 하소연만 내놓고 있다.
산업은행은 전부터 자회사 손실들을 은폐하거나 분식회계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 따라다녔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분식회계 가능성을 알고도 STX조선에 2700억원 가량 대출은 해줬다는 의심을 샀다. 또한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인 대우건설은 지난 6월 4000억원대 분식회계로 금융당국의 감리를 받고 있다. 이처럼 산업은행의 부실한 관리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 더 큰 문제는 대우조선해양에 투입될 자금이 이번 2조원으로 모자랄 것이란 점이다. 대우조선해양이 2018년까지 갚아야 하는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원금은 2조9000억원이다. 올해 상환해야 하는 회사채만 5000억원이며, CP는 2200억원 규모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이 보유하고 있는 유동성은 6000억원 수준이다. 당장 유상증자 1조원, 신규 대출 1조원 등 총 2조원이 투입되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추가 증자에 나서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3분기 대우조선해양의 부채비율을 500% 밑으로 낮추려면 더 많은 돈이 투입돼야 할 상황이다.
지금까지 대우조선해양에 들어간 공적자금은 19조원이다. 그런데 산업은행 측은 '해마다 적자가 쌓이다 보면 2조원 정도 부실이 드러날 수도 있지'라는 분위기다. 이런 이유로 재계와 증권가는 "산업은행은 공적자금이 '국민의 혈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종권 기자 jkp@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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