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러난 3조원대의 사기 대출을 저지른 가전제품 제조업체 모뉴엘이 가짜 서류를 근거로 대출을 받는데 이용한 창구 중 하나가 한국무역보험공사다.
모뉴엘은 허위로 위조한 수출채권을 활용해 무역보험공사에서 4928억원의 신용보증을 받았고, 이를 통해 시중은행 10곳에서 3860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무역보험공사의 조계륭 전 사장은 모뉴엘의 박홍석 대표로부터 9000만원의 뇌물을 받아 구속됐고, 두 명의 간부는 박 대표로부터 각각 1800만원과 800여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임직원의 비리도 문제였으나 모뉴엘의 허위 서류를 걸러내지 못한 무역보험공사의 허술한 업무처리도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인 무역보험공사의 기금이 바닥을 드러내면 국민 세금으로 메워줘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모뉴엘 사기사건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손해율 1240%에도 뒷짐 진 무역보험공사
무역보험공사는 원유와 가스, 철강 등 주요 자원이나 물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0년부터 수입보험을 운영하고 있다. 수입보험은 금융기관이 주요 자원 등의 수입업체에 자금을 대여한 후 이 자금을 회수할 수 없을 때 입게 되는 손실을 보상하는 상품. 무역보험법에 따르면 무역보험의 보험요율은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적자를 보지 말라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상품에 적자가 지속되면 보험요율을 인상하는 등의 적절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2012년부터 철강 반제품 수입에 대한 보험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데도 무역보험공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철강 반제품은 철을 1차 가공해 만든 슬라브(직사각형 모양의 철) 등을 의미한다.
감사원 감사결과, 철강 반제품 수입보험의 손해율은 지난 2012년 323.7%에서 2013년 483.1%로 증가했다. 또 2014년 5월31일 기준으로 1240%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손해율은 보험회사가 거둬들인 보험료 중에서 약관에 정한 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에게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을 의미하는 용어. 결국 손해율이 1240%까지 상승했다는 것은 해당 보험으로 거둬들인 보험료에 비해 지출한 돈이 12배가량 많았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무역보험공사는 보험료율 인상 등의 위험관리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3개 은행으로부터 각각 800억원씩을 특별 출연 받은 후 해당금융기관을 상대로 운영하는 '선적 전 수출신용보증'(수출상품 제조 시 필요한 운영자금에 대한 보증)을 전액보증(100%)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무역보험공사는 해당 은행이 출연한 액수의 17배까지 보증을 해주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이 상품의 보증비율을 전액보증으로 할 경우 공사의 보증서를 담보로 대출해 주는 은행 입장에선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전액보상을 받게 돼 대출심사 시 업체의 재무상태 등에 대한 검토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모뉴엘 사태와 같이 대형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신용보증기금 등에선 무역보험공사와 유사한 이 같은 상품에 대해 부분보증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간 연도말 보증잔액 기준으로 보험공사의 전액 보증비율은 73.9%에 달한다. 반면 신용보증기금 및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전액 보증 비율은 23.2%, 14.6%에 불과하다"며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전액보증 비율을 축소할 것을 요구했다.
신입직원 편법채용 의혹도 제기돼
무역보험공사는 지난 2013년 1월 청년인턴 채용공고를 냈다. 이때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른 시기와는 달리 대학 재학생 및 휴학생을 채용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채용공고에 명시하지 않았다. 정부에선 신규실업자에게 우선적으로 기회를 주기 위해 공공기관의 인턴채용 시 대학 재학생 및 휴학생은 채용대상에 제외시키라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상황이다.
무역보험공사는 당시 대학교 재학생 응시자를 고등학교 졸업자로 분류한 후 서류 및 면전전형을 실시해 2013년 상반기 청년인턴 합격자 총 21명 중 5명의 대학교 재학생이 고등학교 졸업자 자격으로 합격증을 받아들었다. 이들 5명의 재학생 인턴은 2013년 7월 신규직원 공개채용 시 청년인턴 우대조건에 따라 1차 서류전형을 면제받고 2차 필기시험에서 10%의 가산점을 부여받았다. 이 과정을 거쳐 이들 중 한명이 최종 합격했다. 갑자기 규정을 바꿔 재학생을 청년인턴으로 채용한 것이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자아내고 있다.
무역보험공사는 이밖에도 1일의 근로시간을 근로기준법과는 다르게 7시간30분(1시간 휴식시간 제외)으로 운영하고 있고 명예퇴직금도 변칙적으로 과다하게 지급해 온 사실도 적발됐다.
이에 대해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신입직원 채용 시 특혜는 없었다. 감사원이 이번에 지적한 모든 사항은 철저히 점검해 개선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송진현 기자 jhso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