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을 훼손하고, 정보를 빼돌리고….' 가전 라이벌 삼성전자와 LG전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LG전자의 조성진 사장이 지난 9월 초 독일에서 열린 가전박람회(IFA)에서 삼성전자 세탁기를 파손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최근 LG전자 임직원이 삼성전자 시스템에어컨 기술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LG전자의 '1등 주의'로 인해 촉발됐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검찰에 따르면 LG전자는 2009년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진행한 에너지 고효율 시스템에어컨 연구개발 공모에 삼성전자가 제출한 사업계획 발표 자료를 빼돌렸다.
LG전자는 당시 빼돌린 삼성전자의 사업계획서를 참고해 당초 기술평가원에 제출했던 것과 다른 내용을 제출하며 높은 점수를 획득, 3년간 80억원이 투입되는 국책과제 사업자로 선정됐다. 산업스파이를 통해 국책사업을 LG전자가 따냈다는 얘기다. 기술을 빼돌린 당사자로 지목된 윤 전 부장은 '윗선'의 지시로 이뤄진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업계는 이번 일을 계기로 두 회사 간 분쟁이 한층 격화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물론 사건 발생 시점은 차이를 보이지만 양사가 그동안 분쟁을 통해 신경전을 벌여왔다는 게 이유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그동안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성장해 왔다면 2000년 이후부터는 경쟁이 아닌 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선의 경쟁으로 시장 경쟁력 쌓아야"
업계는 분쟁의 원인을 LG전자의 '1등 주의' 경영전략에서 찾고 있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LG전자가 삼성전자와 겹치는 각 사업시장에서 2~3위권에 대거 머물러 있다"며 "시장을 선도하기보다 따라가는 입장인 만큼 2010년 이후 강조해온 '1등 LG' 경영이 직원들에게 왜곡돼 문제의 소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일례로 최근 발생한 냉장고와 에어컨 분쟁 외에도 그동안 LG전자는 삼성전자를 의식하듯 각종 제품 출시 때면 최초·최대 등의 수식어를 앞세운 마케팅을 벌이며 곤혹을 치루기도 했다.
자유경제시장에서 라이벌 관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최고라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업체 간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재계에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는 이유다. 기업 간 라이벌 구도의 효과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동반자 경쟁을 벌이다 보면 상호 부족한 부분을 보안하며 경쟁력을 쌓아갈 수 있다. 이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내를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도 가능하다. 다만 '선의' '공정' 등의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공정성이 없다면 경쟁이 아닌 '진흙탕' 싸움으로 전락, 기업 경쟁력 향상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에둘러 LG전자를 비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