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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화력발전소 안전 비상…26곳 중 우수등급 1곳뿐

김세형 기자

기사입력 2014-02-26 10:58


국내 화력발전소의 공정안전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 경제주간지 <CBSi-더스쿠프>가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에 의뢰해 단독입수한 '공정안전관리 이행상태평가(약칭 PSM평가)' 정부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화력발전소 26곳 중 절반이 넘는 15곳의 안전등급이 'M 이하(보통 및 불량)'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한국동서발전 일산열병합발전소(2012년), 동해화력발전소(2013년), 한국남동발전 분당복합화력발전소(2013년)의 등급은 'M-(불량)'로 밝혀졌다. 우수를 뜻하는 P등급을 받은 곳은 한국서부발전 평택발전소 1곳(2010년)뿐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9조의2에 의해 실시되는 'PSM평가'는 공정안전자료·공정위험평가서·안전운전계획·비상조치계획 등을 분석한 결과다. 고용노동부가 4년에 1번씩 평가한다. 유해·위험설비를 보유한 사업장(발전소)은 의무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평가등급은 P(Progressive 우수), S(Stagnant 양호), M+(Mismanagement+보통), M-(Mismanagement-불량)다. PSM평가를 의무적으로 받는 화력발전소 중 57.69%의 공정안전시스템이 'Mismanagement(공정안전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상태라는 것이다.


심상정 의원은 "입수한 PSM평가결과 보고서는 화력발전소의 공정안전관리가 미흡하다는 걸 잘 보여 준다"며 "발전소의 공정안전관리를 방치한다면 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안전관리 전문가는 "화력발전소라면 최소 S등급을 받아야 한다"며 "M등급 이하의 발전소가 이렇게 많다는 건 공정안전관리가 부실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더 심각한 건 추세다. PSM평가등급이 해마다 하락하고 있어서다. PSM평가결과 추이를 보면, 2005년 11.76%에 달했던 P등급 비율은 2009년과 2013년 0%로 떨어졌다. S등급은 2005년 70.58%에서 2013년 35.71%로 반 토막 났다. M등급은 같은 기간 17.64%에서 64.28%로 크게 늘어났다. P·S등급 비율은 줄어든 반면 M등급은 가파르게 증가한 셈이다. 이 결과는 법·제도가 정한 안전기준을 현장에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박두용 한성대(기계시스템공학) 교수는 "법과 제도, 그리고 현장 사이에 존재하는 '안전 갭'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 공정안전관리 전문가는 "PSM을 심사하는 기준치는 기술의 발전, 사회적 요구에 따라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PSM을 이행하는 사업장(발전소)의 안전관리기술 또는 안전의식수준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며 "심사기준은 세걸음씩 가고 있는데, 이행수준은 한걸음도 나가지 못한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화력발전소의 도급·협력업체가 '안전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도 문제다. 화력발전소 26곳의 PSM평가보고서 228쪽을 분석한 결과, 총 1068건의 지적이 있었다. 이 가운데 39건이 도급업체의 안전관리에 대한 것이었는데, 건수는 적지만 내용이 심각하다. 절반가량인 12개 발전소는 "도급·협력업체와 공정안전정보, 폭발위험성 관련 자료를 공유하지 않는다. 교육자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을 받았다. 5개 발전소에 대해선 '도급업체 근로자들이 독성·인화성물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잦은 도급업체 변경으로 공정안전관리의 연속성이 떨어진다' '현장에서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는 도급업체 근로자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심지어 A발전소의 도급업체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취급하는 에탄올과 에틸렌글리콜의 혼합물이 폭발성 물질인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협력업체도 '안전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8개 발전소는 협력업체 직원들과 비상사태 시 대피처·대피방법·공정안전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협력업체를 위한 위험성 교육이나 사후관리시스템이 부실한 발전소는 11곳에 달했다. 심상정 의원은 "최근 발생한 산업안전사고의 피해자는 대부분 도급·협력업체 근로자들"이라며 "폭발성·인화성 물질을 다루는 화력발전소의 도급·협력업체 관리가 부실한 점은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화력발전소들은 수많은 유해·위험물질을 취급하고 있다. 정부자료 '화력발전소 유해·위험물질 리스트'를 보면, 국내 26개 화력발전소의 유해·위험물질은 75종에 달한다. 이 가운덴 수소·염소·수산화나트륨·하이드라진·치아염소산나트륨·암모니아 등 폭발이나 가열이 됐을 때 사람에게 치명상을 안길 수 있는 물질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화공안전 전문가는 "민간기업의 화학공장과 비교했을 때 화력발전소가 유해·위험물질을 덜 사용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화재나 폭발사고가 발생하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심상정 의원은 "이번 PSM평가보고서를 보면 정부감독이 느슨하다고 판단할 수밖 없다"며 "각 화력발전소는 유해·위험물질을 취급하기 때문에 대형사고가 터지면 근로자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까지 큰 피해를 입어 확실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세형기자 fax123@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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