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포기하지 말고 머리를 쓰자
"휴대전화를 어디에 뒀더라?", "차 키를 어디에 뒀지?", "가스레인지 밸브를 잠갔던가?" 방금 한 일인데도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돌아서면 깜빡깜빡하는 건망증. 40~50대가 되면 누구나 한두 번쯤 경험하는 일들이다. 오죽하면 중년의 건망증이 유머의 단골 소재가 됐을까. 처음 한두 번은 웃어넘기지만, 깜빡깜빡하는 일이 너무 자주 반복되면 슬그머니 '혹시 치매 초기 증상이 아닐까?'하는 걱정이 든다. 이 건망증, 정말 웃어넘겨도 괜찮은 걸까.
40대에 접어들면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건망증은 중년을 곤혹스럽고 우울하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다. 뇌가 여러 일을 처리하면서 과부하가 생겨 일시적으로 저장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능력에 문제가 생긴 경우를 일컫는 건망증은 사실, 질병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근육이 점점 약화되는 것처럼, 건망증도 인체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일상생활에서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기억해야 하지만, 40~50대가 되면 젊었을 때에 비해 기억하는 반응 속도가 느려지거나 기억용량이 부족해 일시적으로 잊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 만큼 건망증은 증상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회복된다는 게 특징이다. 힌트를 주면 다시 기억해낼 수 있을 만큼 약간의 기억력 저하 상태인 것이다. 가물가물하고 깜빡깜빡 잊어버리기는 해도 건강한 상태의, 정상적인 기억 현상이다.
건망증, 초기 치매 증상 아니다
건망증이 빈번하게 반복되면 '혹시 치매로 가는 전 단계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건망증과 치매가 기억력 저하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건망증과 초기 치매 증상은 명백하게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건망증이 기억을 일시적으로 잊은 것이라면, 치매는 기억을 완전히 지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건망증은 뇌의 일시적인 검색 및 회상능력에 장애가 생긴 단기기억장애로 치유가 가능한, 건강하고 정상적인 기억 현상이다. 반면, 치매는 기억장애 외에 시공간파악능력장애, 판단력장애, 언어장애, 계산장애 등 다양한 인지기능 전체가 손상된, 광범위한 뇌손상을 동반하는 뇌질환이다. 가령, 건망증은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순간에 떠올리기 어려울 뿐이므로 차근차근 상황을 되짚어가면 다시 기억해낼 수 있다. 하지만 초기 치매 증상은 기억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원래의 기억 자체를 떠올릴 수가 없다. 건망증으로 진단된 사람들의 상당수가 치매로 진행됐다는 보고가 있으나 이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한편,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만큼 심하게 기억력이 떨어지는 경우는 건망증이 아닌, 기억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특히 다른 사람들 대부분이 기억하는 일을 혼자만 기억하지 못할 경우에는 건망증보다는 기억장애를 의심해 봐야 한다. 기억장애 여부는 나이, 학력을 고려한 평가기준에서 기억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신경인지검사를 통해 진단할 수 있다. 신경인지검사에서 기억장애로 진단받는 경우에는 대개 뇌의 변화가 동반돼 있는 경우가 많다.
운동하고 독서하면 기억력 쑥쑥
건망증이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라고 해서 그저 나이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증세 초기에는 사소한 것을 놓칠 수 있지만 빈도나 종류가 다양해지면 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불편함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건망증은 일시적인 기억장애 상태이므로 장애요인을 제거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우선, 건망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그 요인을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가벼운 걷기나 체조 등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으로, 손가락 운동도 있다. 손가락을 자극하면 대뇌피질에 영향을 끼치므로 수시로 손을 주무르거나 두드려주도록 한다.
신선한 제철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 것도 좋다. 블루베리, 사과, 바나나, 녹색채소 등에는 천연 항산, 항염 성분이 풍부해 산화나 염증으로 인한 뇌손상을 줄일 수 있다.
머리를 거의 쓰지 않는 경우도 건망증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므로, 꾸준히 독서하는 습관을 갖고 한 가지 분야의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 체계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한편, 하루 한두 잔 남짓한 적당한 음주는 건강과 기억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지만 과음은 기억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만큼 피해야 한다.
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