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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와 KT가 벌이고 있는 '쩐의 전쟁'. 1.8GHz대 주파수 경매.

노경열 기자

기사입력 2011-08-26 17:53


'1조원'.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금액 단위다. 국가예산을 논할 때나 글로벌 대기업 1년 영업실적을 얘기할 때나 들리던 '조'라는 단위가 최근 한국 IT 뉴스를 점령하고 있다. 이 단위가 언급된 무대는 더 재미있다. 바로 '경매'다. 고미술품 거래에서나 들을 법한 이 단어가 국내 IT 업계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경매에서 1조원이라?. 도대체 무슨 상품이 걸렸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상품을 일반인이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바로 차세대 이동통신을 위한 1.8㎓ 주파수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차세대 이동통신 패권 두고 맞붙은 SK텔레콤과 KT

이 경매의 참가자는 SK텔레콤(이하 SKT)과 KT, 딱 둘 뿐이다. 하지만 둘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경매가를 올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난 17일 4455억원에 시작한 입찰가가 25일 8941억까지 치솟았다. 그래도 결론이 나지 않아 26일 경매는 다시 이어졌으며 SKT가 입찰한 9950억원에 KT가 유예신청을 하며 결과는 또다시 29일로 넘어가게 됐다. 전문가들은 '1조원 돌파는 시간문제'라고 예상한다. 그만큼 두 회사 모두 1.8㎓ 주파수에 사활을 걸었다는 의미다.

1.8㎓의 의미가 뭘까. 이미 시작된 차세대 데이터 이동통신인 LTE(롱텀에볼루션) 서비스에 최적화된 주파수라는 평가가 있지만 경매 전쟁이 일어난 배경은 사실 주파수 대역이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각 이동통신사가 LTE에 활용하고자 하는 주파수는 800㎒, 900㎒, 1.8㎓, 2.1㎓다. 비유하자면 데이터라는 화물을 운송할 고속도로가 4개 있는 셈이다. 그런데 도로만 있다고 운송을 원활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송할 짐이 많을 경우 화물차가 도로를 꽉 막지 않으려면 차선 자체를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또 8차선으로 넓혀야 한다. SKT와 KT가 벌이는 돈의 전쟁이 바로 이 도로 확장 때문인 것이다.

현재 KT는 900㎒에서 20㎒, 1.8㎓에서 20㎒를 확보한 상태다. LTE라는 짐을 위해 4차선을 확보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LG유플러스 역시 800㎒에서 20㎒를 가지고 있고 주파수 경매가 시작된 날 이미 약속돼 있던 2.1㎓ 단독입찰로 20㎒를 획득했다. LG유플러스도 4차선을 구축한 셈. 하지만 SKT는 아직까지 800㎒의 20㎒ 밖에 안 갖고 있다. 2차선 밖에 없기 때문에 도로 넓이에서 KT, LG유플러스에 뒤진다. 20㎒ 대역폭은 보통 500만명 정도의 사용자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예상되는 만큼 당장 도로를 확장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스마트폰 열풍 후 사용자들이 경험한 특정 지역, 시간대에서의 불통 사태를 떠올려보면 '쾌적한 초고속 무선 데이터 사용'을 위해서는 일단 넓은 도로가 필수라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SKT는 기존 시장에 이어 LTE 서비스에서도 1위를 지키기 위해, KT는 LTE 시대부터 패권을 쥐기 위해 전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과다출혈 경쟁. 결국 부담은 소비자에게로?

문제는 '1조원 돌파'가 궁극적으로 일반 소비자와 동떨어진 소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매방식이니 낙찰가가 얼마가 되든 결국 한 회사가 1.8㎓를 확보할 것이다. 하지만 주파수 확보에 과도한 금액을 썼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예상 외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서비스 가격을 올릴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단순한 휴대전화 시대를 넘어 스마트폰이 생활 속에 깊이 들어온 만큼 소비자들은 서비스 가격이 오르더라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LTE 서비스에 가입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1조원이라는 금액은 결국 서비스 가입자들이 나눠 부담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런 과다출혈은 방송통신위원회가 '동시오름방식'의 경매제를 도입하면서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두 회사가 각각 희망가격을 써낸 뒤 적게 써낸 회사에 상대편의 카드를 보여주고 원할 경우 더 큰 금액을 부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동시오름방식이다. 한쪽이 포기하지 않으면 경매는 절대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SKT와 KT 모두 절대 포기할 의사가 없다.


일각에서는 '결국 못 먹는다면 상대에 큰 타격이라도 주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마지막에 결국 낙찰받지 못 해도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도록 최대한 가격을 높인다는 것이다. 흔히 '승자의 저주'로 불리는 이 작전은 이미 영국, 독일 등 유럽에서 현실이 된 적이 있다. 3G 주파수 경매 때 주파수를 낙찰받기는 했지만 과도한 금액 지출로 회사 자체가 파산하거나 이동통신사업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의 이동통신 및 무선인터넷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소비자들이 신기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또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한다. 이동통신사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투자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주파수 확보 과다경쟁은 우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을 듯 하다. 노경열 기자 jkdroh@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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