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취업자 동병상련하는 '백수만세'
기사입력 2000-11-12 11:35
'내가 대학 4학년때 내 남자친구는 백수였다. 그래서 짜증을 많이 냈는데， 막상 내가 백조가 되고나니 창피하다. 그래서 헤어졌다.'취업정보 사이트 인크루트(www.incruit.com)에 개설돼 있는 '백수만세' 코너가 백수와 백조들 사이에 화제다.
백수들이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이 공간은 벌써 1000여건의 글이 올라와 있다. 어떤 글은 조회수가 1000여회를 넘을 정도.
'95년 무작정 상경， 하루하루 죄의식 속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죄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백수는 '나이는 서른이 되어가고 늙으신 부모님을 고생시킨다는 생각에 괴롭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고졸로서 직장생활을 하며 주경야독으로 전문대를 졸업， 자격증까지 여러개 땄는데 취업이 안된다고 괴로워했다.
백수에겐 사랑마저 사치일까.
자신의 처지가 부끄러워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한 여성은 '사랑이고 뭐고 현실 앞에선 아무 소용없다. 배부르고 사랑난다. 사랑이 배부르게 해주는건 아니다. 백수에겐 정말 사랑같은 거 배부른 소리'라고 자조했다.
자칭 '비참한 백수'는 '직장에 다닌다고 가족들을 속이면서 시립도서관이나 PC방을 전전하며 각종 취업사이트를 헤매고 있다'며 '남들처럼 점심을 맛있게 먹고싶다'고 밝혔다.
모대학 행정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한 여학생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여행사나 호텔 취업을 준비해왔는데， 영어가 너무 안돼 고민'이라며 '중고교 땐 공부도 잘하고 영어도 잘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그래도 그녀는 '우리 모두 힘내자， 화이팅!'이라는 말로 글을 끝냈다.
운영자는 "'백수만세'는 서로 고민을 나누고 용기를 주는 코너로 선보였는데 인기가 대단하다"며 "모든 백수들이 취업해 이 코너가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letit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