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조영남 횡설수설"내 속을 나도 몰라"
기사입력 2000-11-10 11:35
LA 공항 대합실에 쭈그리고 앉아서 이 글을 쓴다. 이건 시간에 쫓겨서 막 쓰는 글이다. 읽으려면 읽고， 말려면 말길 바란다. 물론 총체적으로는 나의 불찰이다. 미리 썼으면 이런 일이 없는데 차일피일 뺀질대다가 이런 난리를 볶게 됐다.
사람은 자기의 생각， 자기의 맘을 믿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이나 양심이라는 것도 고약하기 이를데 없는 물건이다. 지난 8년간 나는 KBS의 정규 프로그램 '체험 삶의 현장'을 진행하면서 계속 투덜댔었다.
나는 닷새이상 걸리는 여행을 할 수없다. 세상 어디로 가도 닷새 이상을 머무를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빌어먹을 '체험-' 을 녹화하러 반드시 녹화날짜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아! 나는 방송에 묶인 몸이다. 자유가 없는 몸이다. 해외로 훨훨 떠돌아 다닐 수가 없는 몸이다.
이런 식으로 툴툴대다가 '체험-'을 왕종근과 김미화로 대체한다는 연락이 왔을 때， 아!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방송을 7년 반만에 놓자마자 꿈에도 그리던 꿈의 도시 뉴욕으로 날아갔다.
'최소한 3， 4개월은 거기서 현대미술의 추세나 뮤지컬의 추세를 살피며 느긋하게 놀다 온다' 이렇게 계획이 영글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뉴욕에서 단 사흘간 친구 만나며 돌아다니다 '아! 뉴욕도 재미 없구나， 뉴욕도 내가 머물 곳이 못 되는구나'하면서 곧장 서울로 컴백했다.
내가 그리는 것은 '체험 삶의 현장'의 진행이요， 내가 있고 싶어하는 곳은 단연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곳이었다. 이게 내가 지금 LA공항 2층 카페에서 내 조국의 SC칼럼 식구에게 간곡히 전하는 맘이다.
내 생각은 믿을 수 없고， 내 맘도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이게 오늘의 핵심이다. 그러면서 나는 또 불평이다.
'아! LA에서 좀 재미있게 보낼까 했는데 또 서울로 가야 하는구나'하면서 나는 또 불평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이번엔 있다. 지금부터 몇 주전 나는 홍콩으로 날아가 공연을 하고 닷새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 '체험-'녹화를 끝내고 다시 그 날 저녁 비행기로 멀리 영국으로 날아가 공연을 하고 정확하게 닷새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 하룻밤 지내고 '체험-'녹화를 마친 다음 이번엔 같은 날 저녁 8시 비행기로 미국을 향해 왔다.
LA에서 이틀 공연을 끝내고 다음날은 지프차에 그림을 잔뜩 싣고(샌프란시스코의 강대석 후배가 미리 운반해놓고 있었다) 샌디에고로 내려가 이틀동안 '조영남 현대 미술전시회'를 한국일보 주최로 오픈 시키고 다음날 샌디에고 공항으로 새벽같이 달려 공항에서 이 글을 쓰며 궁상을 떨고 있는 것이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하면 마감시간 목요일이 지나기 때문에 이걸 써서 후배에게 FAX로 부치라고 당부를 해놔야 제대로 시간을 맞추게 되어있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아마도 조영남이 세계에서 가장 바쁜 연예인이라고 생각 할지도 모르는데， 쥐뿔도 그런 의미는 아니다.
옆에서 떠드는 소리가 박찬호가 비행기에 함께 타고 서울로 간다고 한다. 이곳 마이너리티 사람들은 고어가 당선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부시가 될 것 같다면서 난리다. 하여간 서울가서 우린 다시 봐야 한다. 〈가수〉
